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 인간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말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며 삶을 끝없는 파동과 순환 그리고 원의 개념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돌고 돌아 만나고 헤어짐의 영원하고도 일시무시一始無始한 반복의 도정에 서 있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마지막이라는 말을 감추고 무시하려 드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망국과 건국, 분단과 통일 사이에서 몸부림치며 그 시대의 아픔을 함께 했던 1908년 6월생 그리고 1908년 1월생과 같이 사라져 간 사람이나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 한국전쟁의 알파와 오메가는 외세로부터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었다.
한국전쟁의 절대선, 통일은 한국전쟁의 전황에 따라 춤추는 선무당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며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는 특히 통일에 목마른 한민족에게는 눈에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환호와 탄성이 엇갈렸다.
1951년 4월 11일 확전을 원했던 맥아더를 해임하고 제한전을 통해 휴전회담을 추진했던 트루먼 행정부는 조기에 전쟁을 종식시키고자 공산주의자와 회담을 계속했으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전선동을 통해 무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적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1952년 해가 바뀌고 미군과 국군이 고지전에서 의미 없이 갈려나가고 나서야 맥아더 장군의 전략이 맞았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적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려고 하였으나 38선 부근에 강력한 갱도식 방어진지를 지구 한 바퀴 반이상의 길이로 단단하게 구축한 적을 끌어내기는 대략난망大略難望이요 만시지탄晚時之歎이었다.
뒤늦게 현실을 자각하는 타임, 현타가 온 트루먼 행정부는 추격하며 섬멸하는 쉬운 전투를 실기失機하고 진지에 깊숙이 틀어 박혀 있는 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야 하는 고지전의 수렁에 빠져 스탈린의 조소와 마오쩌둥의 협박을 함께 받으며 한국전의 수렁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며 인적 물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1952년 미국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1952년 11월 4일 치러진 미국 대선은 미국에서도 한국에도 중요한 역사적 갈림길이 된 선거이다.
유럽연합군사령관이던 세계 2차 대전 노르망디의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1890~1969)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공화당 러닝메이트가 민주당 애들 레이 스티븐슨(Adlai E. Stevenson II, 1900~1965)과 존 스파크먼을 꺾고 미국 제34대 대통령과 36대 부통령으로 등장하였고, 이로써 1932년 이래 20년 장기집권한 민주당은 대공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격동의 시간을 넘어 한 시대를 마감하였고 미완의 전쟁, 교착상태의 한국전쟁도 마지막을 고하고 끝낼 인물로서 한국민들은 아이젠하워와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에 가겠다. 한국전쟁은 내가 끝낸다"라고 대선 공약을 낸 아이젠하워는 지루한 전쟁에 염증을 내던 미국민에게 압도적 표를 받았고,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취임식 한 달 전에 서둘러 한국전선으로 날아온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과 육사동기인 밴플리트 8군 사령관은 같은 군인으로서 제한전이라는 족쇄에 갇혀 고군분투하고 있던 미군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아이젠하워임을 확신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끝내겠다는 아이젠하워 당선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외교적으로 설득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로 가는 마지막 기회를 잡고자 했고 그 마지막 기회가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 방한임을 우남은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