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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40, 연극이 끝난 후 1953

by 윤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무대 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작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가사이다. 무려 45년 전의 노래임에도 저음의 여성보컬의 독특한 음색과 멜로디까지 노랫말만큼이나 전위적 前衛的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프랑스어 avant-garde(영어로는 vanguard)로, 본래 의미는 근대 이전의 회전 전투會戰 戰鬪pitched battle에서 가장 앞 열을 맡는 부대인 전위대를 뜻하는 군대 용어였다. 망국의 독립전쟁에서 가장 앞열에 서서 순국한 1908년 6월생 매헌도 건국의 한국전쟁에서 가장 앞열에 서서 남과 북의 총알받이가 되어 스러져간 1908년 1월생의 젊디 젊은 제자들도 전쟁이라는 치밀하고도 잘 짜인 비극으로 점철된 연극무대에서 가장 전위前衛에 위치해 있었던 진정한 아방가르드 avant-garde였는지도 모른다.

대본臺本 없는 연극도 없고 각본脚本 없는 드라마도 없으며 대본은 물론 각본마저도 없는 전쟁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전쟁은 우연이나 우발적 임을 핑계로 삼지만 수많은 목숨과 재화가 투입되는 전쟁에서 대본과 각본 같은 치밀한 계획이 없다는 것은 여러모로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대본과 각본대로 술술 전쟁이 도발한 쪽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강력한 상대가 있을 경우는 더 그렇다.

당선인 신분으로 한국전선으로 날아가 결코 만만하지 않고 노회 하기까지 한 1875년생 약소국의 대통령, 우남을 의도치 않게 만나고 온 아이젠하워 당선인은 1953년 해가 바뀌고 추위가 몰아치는 1월 5일 대서양을 횡단한 영국의 초호화 여객선 퀸 메리(Qeen Mary)호를 타고 온 1874년생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을 만났다.

아이크 처칠 회담에서 한국전쟁의 대본은 유럽 우선 정책이라는 영국의 요구에 따라 즉각 휴전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지고 아이크는 1월 20일 미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새로운 국무장관 덜레스 등 새 정부 조각組閣을 마무리한 뒤, 3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원들과 1시간 50분 비밀회의를 열었고 그의 대선공약 ’ 한국전쟁 종결‘을 새 정부 첫출발부터 최우선 정책으로 밀어붙인다.

1952년 12월에서 1953년 1월 사이에 미국의 정권교체를 통일을 향한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아이젠하워를 설득하려고 했던 1875년생 우남의 외교역량은 때맞춰 나타난 1874년생 대영제국의 처칠에 의해 허무하게 조각阻却될 무렵 우남과 1908년 1월생과 같은 한국민들은 마치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객석에 혼자 앉아 조명이 꺼진 텅 빈 무대를 보는 느낌이었을까?

분주히 돌아가는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세트가 설치된 무대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던 수많은 단역배우들의 혼신의 연기도 무색하게 아이젠하워라는 주연배우는 우남과 단역배우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처칠이라는 낙하산 타고 나타난 또 다른 배우의 손을 덥석 잡고 무대를 내려간 뒤의 정적과 어둠 만이 1953년의 한반도를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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