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광란의 세기였다. 1,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규모 살육전은 물론이고 만주사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 전쟁까지 인류는 영토를 둘러싸고 그것이 자국의 땅이든 식민지이든 가리지 않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괴물이 되어 죽고 망할 때까지 싸웠다.
한국전쟁은 2차세계대전 당시 나란히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양강, 미국과 소련 간의 세계 패권질서를 거머쥐기 위한 헤게모니 다툼이었다. 비록 마리오네트 Marionette 김일성이 행동대장처럼 남침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마리오네트 줄을 잡고 조종하는 배후가 스탈린이라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그래서 6.25 남침 직전까지 에치슨 라인까지 그으며 한반도에 대해 미온적 정책으로 일관했던 트루먼 행정부가 기민하게 주일미군을 투입하고 UN안보리를 소집하여 최초의 유엔군을 파병한 것은 스탈린과 패권 다툼을 벌이던 트루먼이 6.25 남침을 스탈린의 3차 세계대전 개전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대륙의 패권질서는 해양의 패권질서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패권은 오래된 경험을 바탕으로 노회하고 복잡하다. 결국 대륙의 패권질서와 해양의 패권질서를 나누어 가지고 있었던 소련과 미국은 땅의 원리를 만지작거리던 스탈린이 해양의 섭리에 귀 기울이던 트루먼을 끌어들여 세상의 원리로써 자연의 섭리를 희롱하는 한판의 체스게임이자 성동격서聲東擊西와 이합집산離合集散 그리고 어부지리漁夫之利의 이익을 얻고자 했던 스탈린 주도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히틀러보다 더 많은 인류를 죽음으로 내몬 독재자이다. 특히 한민족에게 있어 스탈린은 중일전쟁 당시 연해주를 실효적 점유하며 살고 있었던 연해주 동포들 20만을 소요와 반란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하루아침에 정든 땅을 뺏고 강제이주시킨 장본인이며 그 와중에 수많은 고려인들을 죽어나가게 했다. 심지어 스탈린은 이 비극의 이주과정에서 수시로 고려인들을 작물재배의 북방한계선까지 밀어붙이며 우리 민족을 생존의 극한까지 몰아갔고, 중앙아시아까지 피눈물 나는 고려인들의 아리랑이 퍼지게 된 이유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은 각본 기획 연출 감독까지 도맡은 한국전쟁에서 한민족 4백만 명을 사상시킨 민족의 원수이며 한국전쟁의 전범이다.
휴전회담이 시작되고 대화로써 전쟁을 끝내려던 트루먼 행정부는 공산주의자와의 대화가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달아 가면서 판문점 휴전 협상은 파탄을 맞고 있었다. 회담중단 지시를 내린 릿지웨이의 후임 클라크 유엔사령관도 강력한 성명을 낸다. “공산군 측의 모욕적이고 선전적인 장광설을 듣기 위해 유엔군이 다시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1952년 10월 8일 판문점이 문을 닫자 즉각 전투의 불길이 격화되었다. 공산군은 휴전기간 준비했다는 듯이 매일 4만~5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클라크의 유엔군도 고지마다 육해공의 입체공격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이런 전투는 이듬해 1953년 4월 25일 회담이 재개될 때까지 6개월 반 동안 절정을 이룬다. 특히 철원의 281 고지, 백마고지, 금성지구의 수도고지, 지형능선, 금화지구의 저격능선 등은 격전지중의 격전지로 한국군 전사에 빛나는 전공은 대부분 이때에 이루어졌다.
3년 전 남침을 간청했던 마리오네트Marionette 김일성이 미 공군의 B29 융단폭격으로 북한 전역이 초토화되고 전멸의 위기에 직면하자 태도를 180도 바꾸어 마리오네트 줄을 잡고 흔들던 스탈린에게 제발 정전을 허락해 달라고 읍소했으나 “북조선은 전쟁에서 크게 잃을 것이 없다. 지금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포로송환문제 협상에서 절대로 양보해선 안된다”라고 다짐하며 “내가 죽는 순간까지 양보를 허락할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에 발맞추듯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6.25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소비에트의 이득”이라면서 “조선의 전쟁은 오래 할수록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대의명분에 도움이 된다”는 결정문을 1952년 11월 2일에 채택하였다.
1908년 1월생의 눈에 비친 한국전쟁은 스탈린이라는 민족의 원수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메가폰을 잡은 감독이 되어 미소 패권질서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미국과 중국을 원수같이 싸우게 하고 애당초 남북한 통일은 안중에도 없는 스탈린이 동족상잔의 한국민들이 전쟁으로 갈려나가는 비극마저도 스탈린이라는 전범에게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엄혹한 전쟁의 현실 앞에서 젊은 날 자강했고 지금은 젊은이를 자강 시키고 있던 1908년 1월생은 약소국 대한민국의 비애와 함께 세계패권질서에 따라 춤추고 있는 국제역학관계의 무시무시함에 또다시 치를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