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믿고 상륙한 대륙을 밑천 삼아 해양세력은 서에서 동으로 가는 길을 막은 오스만 제국을 피해 지구가 둥글다는 신념 하나로 서로서로 가다 보면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인도 대륙으로 갈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일엽편주에 올라타 망망대해를 향해 돛을 높이 올렸다.
1592년 백 년 만에 전 세계 바다를 장악하고 인도라고 믿은 남북 아메리카에서 향신료 대신 금은보화와 노동력을 챙긴 해양세력들은 드디어 지팡구라고 부르는 극동인지 극서인지 모를 일본열도에 상륙하여 내전을 끝내고 정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주구 삼아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넘고 인도까지 달려가서 해양세력의 천년의 숙원을 풀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대륙세력에 막혀 일본열도로 돌아갔다.
1892년 한국 기독교의 첫 찬송가 찬미가가 조선에 울려 퍼졌다. 그로부터 2년 뒤 동학전쟁이 일어났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합방 중일전쟁을 승리한 해양세력의 주구, 일본은 동에서 서로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진출하여 서에서 동으로 진출하여 인도를 일찌감치 점령한 영국과 만났다.
해양세력은 서세동점과 동세서점을 떠나 지구를 한 바퀴 돌리는 무역로를 개척하면서 세계패권질서를 대륙으로부터 해양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으나 서세동점 세력과 동세서점 세력 간의 갈등과 알력이 터진 태평양 전쟁을 겪고 이 빈틈을 노리고 대륙세력이 내려와서 해양세력을 유라시아 대륙에서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세계패권질서 상에 놓인 한국전쟁의 세계사적 의미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한국전쟁은 이렇게 문명사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이다. 1492년 이래 사백오십여 년의 세월 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으로 진출하려던 해양세력은 신대륙을 기반 삼아 문명의 헤게모니를 잡았으나 서유럽 변방의 해양세력 간의 식민지를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1,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질서는 또다시 전통의 강호 대륙세력이 과거의 힘을 회복하고 해양세력의 중심, 서유럽은 잿더미가 되었고 전쟁을 통해 신흥강호가 된 신대륙 미국이 세계패권질서의 가장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어부지리로 세계패권국에 가장 근접했던 미국은 과거의 전공으로부터 오늘의 패권을 구가하고 싶어 했으나 늘 패권은 허풍과 위세보다는 피로 얼룩진 전쟁을 원했다. 잊힌 전쟁이라는 한국전쟁을 통하여 피의 대가를 지불한 미국은 자유진영의 유일무이한 패권국의 지위로 명실상부하게 데뷔하였고 오늘날 지구 전체 패권국으로 올라서는 터닝포인트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고 1953년 7월 27일 정전된 한국전쟁이다.
망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1908년 1월생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귀가 따갑게 들어온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며 일본은 일어난다는 말이 6.25 전쟁을 통해서 그대로 증명되는 역사의 평행이론 앞에서 그래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미국을 믿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분단된 한반도의 지정학적 저주 앞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