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독립국 중에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은 대표적인 나라로 대한민국이 꼽힌다. 과연 그런 것인가? 세계로부터 이런 부러움 섞인 찬사를 들을 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국뽕에 도취된다.
세상을 사는 인간은 세상의 격려와 칭찬을 먹고 산다. 그 세상의 원리가 비록 반칙으로 얼룩진 언덕을 비비고 딛고 이용하며 악용한 독재자일수록 세상의 찬사를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들과 같은 부류들은 자연의 섭리를 귀담아듣는 것을 가장 어려워한다.
그들에게 세상의 칭찬과 격려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왜 그들이 칭찬받고 나아가 숭배까지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 아주 작은 성찰이라도 하는 독재자는 드물다.
이와 같이 가치지향적 삶이 아니라 수단을 목표로 잘못 설정한 목표지향적 삶에 경도된 독재자들로 인해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공산 독재세력은 세를 넓힌다. 따라서 독재와 민주의 구분은 의외로 간단하다. 독재는 아무리 사탕발림으로 국민을 선동해도 독재 자체가 목표이므로 독재의 칼날은 매섭고 질기다. 민주는 설사 과정이 독재라 해도 독재에 비해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집권기간과 권력교체의 결과만 보면 그가 독재를 했는지 민주를 했는지는 바로 판명이 난다. 다만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속이는 옷장사와 재단사에게 농락당하거나 최고의 베스트셀러 이자 스테디셀러인 구약성경 솔로몬의 재판을 알고도 누가 진짜 애기 엄마인지 모른다면 우리의 민주화는 많은 길을 돌아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망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우리는 놀랍게도 산업화 이전에 민주화의 기틀을 잡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드문 나라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만 모르는 것처럼 산업화와 민주화의 명과 암을 함께 가진 유신독재 이후 해방정국을 방불하게 하는 종북학생시위로 인해 대한민국이 민주화가 되었다는 민주화에 대한 착각을 다수의 국민들이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민주화로 인한 과실의 대부분을 착복하고 있고 세습까지 하려는 매국 독재세력들이 준동하는 모습을 2025년 현재까지도 우리는 질기게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화를 가장한 매국 독재세력일 뿐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속인 옷장사와 재단사의 농간에 우리가 놀아나지 않고, 솔로몬 재판에서 가짜 엄마와 같이 분단된 대한민국을 한번 더 자르고 분열시켜 기어이 그들의 시커먼 뱃속을 채우고야 말겠다는 매국적 진면목은 솔로몬 판결의 진짜 엄마를 가리는 현명한 판단으로 진짜 민주화 세력이 누구인지만 우리가 구별할 수만 있다면 그날이 가짜 엄마로부터 애기를 지키고 사기꾼 옷장사 재단사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 민주화를 착복한 가짜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날이 되는 것이다.
이제 고향의 학교를 떠나 대학강단에 다시 서게 된 1908년 1월생은 해방으로 진주한 미군정이라는 군대와 함께 들어온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도 유엔의 깃발아래 평생 민주주의를 체득한 우남을 대통령으로 세운 대한민국 건국과 제헌헌법은 비록 6.25 전쟁 전후의 혼란 속에서 이적, 여적세력의 매국적 준동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유당 십 년 독재를 수반하였지만 우남 스스로가 이식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3.15 부정선거에서 분연히 일어나서 마침내 1960년 4.19 민주화 의거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했고 대한민국에 민주화를 이식시킨 우남을 하야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세계만방에 확인시켜 주는 1960년 4.19 민주화 의거를 현실에서 보게 되었다.
이처럼 민주화는 민주화를 이룬 사람부터 권좌에서 내려올 수 있게 해야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민주화의 역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4.19 의거로 부상당한 학생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 다친 학생들의 손을 잡고 배우는 학생이라면 불의에 항거할 줄도 알아야지라고 격려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마지막 공식행사를 마친 86세의 노구, 우남은 홀연히 권좌에서 내려와 그토록 원했던 대한민국 산업화를 미완으로 돌리고 민주화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한민국을 떠나 하와이로 돌아올수 없는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