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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78, 양익兩翼1978

by 윤해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와 같이 우리는 시와 시 사이 공과 공 사이 인과 인 사이를 헤쳐나가며 사이사이를 비집고 날아다니면서 한 세상을 살다가 사라진다.

새가 날개가 있어 좌우 균형을 맞추며 날아다니듯이 인간도 시간과 공간 사이를 살아갈 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양쪽 날개, 우익과 좌익의 균형 속에서 살아가야만 균형을 잡고 세상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한쪽 날개가 부러지는 것의 비참함은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에게는 비참한 죽음을 의미하고 세상을 살면서 시간과 공간을 사는 인간에게는 심각한 결핍을 초래한다. 결핍을 가진 세상 속 인간들의 몸부림이 역사를 만들지만 그렇게 만든 역사 때문에 늘 세상은 피로 얼룩지기가 쉽다.

망국의 식민지 청년이라는 결핍을 노력하여 실력을 기르고 자강 하는 것으로 결핍을 메우고 망국이라는 결핍을 다시는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내 생명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좌우명으로 달려오면서 혁명과 유신으로 산업화를 통한 대한민국 번영을 향해 매진하던 식민지 청년 출신의 대통령 박정희는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의 흉탄으로 육영수 여사를 먼저 보내는 비극적 사건과 마주했다.

박정희에 대한 호 불호는 갈라졌지만 퍼스트레이디로서 영부인 육여사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가히 압도적이었고 실제로 육여사는 검소하고 단아했으며 개발독재로 소외되고 어두웠던 사회의 이면을 감싸줄 줄 알았고 청와대 야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결핍으로 가득 찼던 박정희의 안해이자 박정희가 험난했던 유신의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양 쪽 날개 중 귀중하고 필수적이었던 한쪽 날개였던 것이다.

문세광의 총격이 끝나고 육영수여사가 실려나가는 와중에서도 의연하게 8.15 광복절 행사를 마무리하는 공인으로서나 역사적 인물로서 박정희는 불세출의 지도자임에는 분명해 보였으나 한 사람의 남자로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한 여인의 지아비로서 오십 대 후반의 가장으로서 그야말로 인생 삼대 불행 중 가장 힘들다는 중년상처를 한 그 순간 산업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끌고 말겠다는 박정희의 날개 한쪽은 꺾였고 그에게는 더 이상 결핍의 승화가 아닌 결핍의 해소라고 하는 인생 최대 장애물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그 자신도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소년등과少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궁핍老年窮乏에서 이미 소년, 중년의 불행을 일찍이 몸소 겪고 고희의 나이로 노년에 접어든 1908년 1월생은 동시대의 아픔과 결핍을 공유했던 망국의 식민지 청년 출신의 대통령 박정희가 자신이 겪은 인생의 불행마저 그대로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자신이 마지막 불행만은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 박정희는 날개 한쪽이 부러진 체 마치 자신의 노년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한반도 5천 년 가난과 궁핍을 몰아내고 오로지 대한민국 후대의 번영을 도모한다는 사명감으로 달려가는 결핍으로 가득 찬 초점 잃은 그의 눈동자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한없는 연민을 느꼈다.

1978년 1월 18일 박정희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더, 미사일 등 각종 병기를 생산 중이며 항공기 산업과 특수전차 개발에 착수했다고 발표하였다. 3월 7일 팀 스피릿 '78 한미합동 훈련이 개시되었다. 3월 29일 제26차 남북적십자실무회담이 북한 조선적십자회의 불참으로 연기 되었다. 이로써 남북대화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4월 14일 서울 세종로 구 시민회관 터에 세종문화회관이 개관되었다. 5월 1일 남산 3호 터널이 개통되었다. 5월 26일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전신인 '여천석유화학공단'이 준공되었다. 7월 6일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7월 28일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영국에서 탄생했다. 8월 8일 정부는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한 '8.8 조치'를 실시하였다. 9월 17일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상호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에 합의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었다. 9월 26일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국산 유도탄인 백곰 미사일의 시험발사가 성공하여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미사일 개발 보유국이 되었다. 9월 29일 내무부는 10월 1일부터 국기 하강식을 거행할 것을 전국 시 도에 지시하였다. 11월 23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되었다. 12월 12일 이날 열린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여당인 공화당을 1.1% 더 앞질러서 승리하는 바람에 유신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12월 13일 주한 미군 전투부대 1진 219명이 오산기지에서 철수하였다. 12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최규하 국무총리를 유임시키고 11개 부처장관을 경질하는 등의 개각을 단행하였다. 중국의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이 중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2월 27일 박정희가 제9대 대통령으로 또다시 취임하였다. 이는 그의 생애 마지막 대통령 취임식이었다. 김대중이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내무부에서 미등록도서 및 비정위치도서 등록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애초에 북한 영토인 함박도가 행정상으로는 대한민국 영토로 처리되면서 훗날 논란의 빌미를 주게 되었다.

1978년 권력을 잡은 지 18년 째로 접어든 박정희는 양익兩翼 중에 한쪽날개가 꺾이고, 초점 잃은 눈동자로 애써 현실부정을 하면서 의연하게 국정수행에 나섰지만 고도성장의 후유증인 인플레이션과 부가가치세 도입여파로 국민적 반발을 불러와 부가세 철폐를 내세운 야당에게 참패하면서 정권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으며, 2차 오일쇼크는 없던 기름마저 대한민국의 앞날에 부어 산업화시대 안에 남아있던 민주화의 불씨를 댕겨 이듬해 부마항쟁으로 연결되면서 10.26이라는 한 시대의 종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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