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재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진이 올 때도 진앙을 중심으로 파동과 같이 대지진과 여진이 반복되면서 점차 지각이 안정을 찾아가듯이 재앙도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이 물결은 동심원을 그리며 주위로 퍼져나가다가 흩어지면서 사라지는 법이다. 다만 전조와 여진 그리고 지진의 규모를 종합하여 진앙이 드러나듯이 마찬가지로 징조와 여파 그리고 피해의 규모가 합산되면 재앙의 전모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난다.
범유행전염병을 가리키는 어휘 '팬데믹(판데믹)'은 그리스어 '판데모스(pándēmos, πᾶνδῆμος)'에서 유래했다. 이는 '아우르다'는 뜻의 접두사 'pan-'과 '사람'이라는 뜻의 어근 'dêm', 그리고 형용사격 접미사 '-os'가 결합한 말로 '인류 공통'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라틴어 '판데무스(pandēmus)'가 되고 다시 17세기 영국에서 'pandemic'이라는 영어식 어휘로 바뀌어 특히 질병의 대유행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였으며, 이것이 팬데믹의 사전적 기원이다.
두 가지 이상의 전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경우 트윈데믹 twindemic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0년에 동시 유행한 인플루엔자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바로 그것이었다. 팬데믹과 달리 트윈데믹 상황은 누가 공식적으로 선언, 지정하는 것은 아니며 어느 한쪽의 전염병이 우세한 경우 다른 쪽의 전염병은 약해지는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전 세계적인 범유행전염병 pandemic으로 확산되면서 2020년 한 해의 일상을 뒤집어놓았다. 연말까지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는 계속되었고, 전 세계 감염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여 한 해 동안 8,325만여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으며 , 그중 198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감염력이 높은 변이 코로나19가 등장하는 등 그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결국 2020년 연말에 코로나19는 절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세상을 만들고 사는 인간의 문명은 일견 견고해 보여도 전쟁이나 재난을 만나면 일거에 무너지듯이 파스칼은 수상록, 팡세에서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말했듯이 인간의 마음과 마음이 만든 일종의 가상세계인 말과 글로 만든 문명 자체가 갈대로 엮은 약하디 약한 얼개인지도 모른다. 습지나 물가에서 자생하면서 바람과 물결에 휘둘리는 연약한 갈대이지만 갈대 같은 인간은 비록 우주가 물 한 방울로 자신을 죽일 수도, 인간 자신이 서서히 죽어가면서 우주가 자신보다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생각하는 갈대 A thinking reed로서 천사의 위대함과 동물의 비참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유를 통해 비로소 중간과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 즉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과 사유를 통하여 위대한 문명을 발전시켜 나간 인간이 만든 세상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무자비한 우주적 섭리 앞에서 문명을 눈부시게 발전시킨 세상의 원리가 얼마나 허접한 것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미시계를 말과 글이라는 문명의 도구를 사용하여 보이는 거시계로 옮겨 놓았지만 말과 글의 불완전성으로 세상에서 보이는 거시계의 원리는 스스로 그러한 미시계의 섭리를 따라가기에는 한참 못 미친다.
2020년, 새로운 10년이 시작하자마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세계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스페인 독감 이후 100여 년 만에 전 세계에 최악의 인적, 경제적, 사회적 피해를 불러온 팬데믹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등등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었으며 관광, 문화 같은 특수 업종은 매출이 90% 이상 감소하기도 하는 등 고사위기에 처할 지경이 되었다. 이 사상 초유의 전염병 재난 하나 때문에 나머지의 모든 사건들이 묻혀버렸다. 2020 도쿄 올림픽과 UEFA 유로 2020, 2020 두바이 엑스포가 열릴 예정이었던 해였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세 이벤트 모두 1년 연기하여 2021년에 열리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총선과 재보궐선거가 4월 15일에 치러졌다. 최초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18세 선거권이 주어진 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 비례위성정당 더불어 시민당이 180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고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는 "슈퍼 여당"이 되었다. 11월 3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과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여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었고, 9월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다시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팬데믹으로 초토화된 영화계에선 연초부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의 4관왕을 달성하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의 쾌거를 달성했다. 특히 비 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최초였다. 11월 24일 어수선한 정국에 기름을 부은 검찰총장 업무정지 징계는 12월 초에 열린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직무정지, 수사의뢰는 모두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이 윤석열이 제기한 검찰총장 직무배제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윤석열 총장은 즉시 검찰 업무로 복귀했다.
2020년은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10년으로 나아가야 할 중차대하고 희망으로 시작되어야 할 시기였으나, 세상이라는 거시계의 최상위포식자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시계의 한낱 미물이라 무시했던 바이러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인간이 만든 거시계의 문명을 사실상 올스톱시킨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 모두가 거시계와 미시계를 아우르는 지구 생명체로써 우리 인간은 과연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라고 하는 질문과 자각을 어쩌면 처음으로 어렴풋하게나마 떠 올렸던 한 해였을지도 모르는 지난했던 2020년이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가는 국방부 시계처럼 꾸역꾸역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