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 해 록] 백년전쟁 121, 백신 2021

by 윤해

2021년 흰 소의 해라는 의미의 신축辛丑년 새해가 밝았다. 팬데믹과 트윈데믹이 휩쓸고 간 세상은 공포와 충격으로 일상을 뒤흔들었고, 이것은 전쟁이라는 폭력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침공이었으며 선전포고도 소리소문도 없이 조용히 보이지 않는 암살자로서 우리를 질병과 죽음으로 몰아넣고 적자생존의 서바이벌 게임처럼 인류를 솎아내고 있었다.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서 자부하고 있는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지나온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역사, 46억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 , 40억 년이라는 생명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20만 년이라는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는 그야말로 억겁의 시간 중에 째깍거리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감각 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생명과 나아가 의학이라는 인간이 만든 과학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질 수 있으며 우리가 보고 보이는 거시계巨視界에서 이룬 성취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짐작할 수도 없는 미시계微視界라고 하는 40억 년의 지구생명의 역사와 여전히 함께 숨 쉬고 있고 불가분의 관계로써 이어지고 있다는 자연의 섭리 앞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40억 년의 생명의 역사와 연결되어 20만 년 전에 출현했고, 19만 년 동안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존했다. 그동안 수많은 절멸의 순간을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1만 년 전 농업혁명을 일으키면서 말과 글로 된 일종의 가상세계인 세상을 만들었고 호모사피엔스가 만든 세상의 원리 안에는 마치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짐승들처럼 가축화된 동물들도 우리와 함께 하면서 호모사피엔스는 비로소 지구최상위 포식자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농업혁명이 1만 년의 시간 동안 인류가 구축한 가상세계였다고 한다면 가축혁명은 어쩌면 생명의 역사, 즉 40억 년이라는 억겁의 시간과 연결되는 미시계의 문을 열고 들어간 대사건이었다. 인류가 비록 뇌와 손의 공진화를 통해 세상이라는 가상세계를 만들면서 인간으로 재탄생했지만 여전히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동물의 노동력과 고기, 가죽, 털뿐만 아니라 가축화된 동물들과 40억 년의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균과 바이러스라고 하는 인수공동면역체계를 획득함으로써 인류는 비록 뇌정보 세상이라는 가상세계에 갇혔지만 가축을 통해 유전정보 세계와도 실오라기 같은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되면서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을 그 당시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1만 8천 년 전 얼어붙은 베링회랑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 잡고 빙하기가 끝나고 빙하가 녹으면서 베링회랑이 베링해협이 되어 1만 8천 년간 신대륙에서 고립되어 독자적으로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1492년 구대륙의 콜럼버스가 가져온 천연두와 결핵균에 의해 90%의 원주민들이 몰살하면서 세계사의 물줄기는 총칼이 아니라 균에 의해서 격동했고, 산업혁명을 통해 쇠를 재료로 하여 기계를 발전시킨 해양세력들에게 패권은 넘어갔다. 이처럼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도 보이지 않는 곳, 즉 수면 아래에서 잠복하고 격동하는 그 무엇인가에 의해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면서 한 발자국 씩 전진하는 것이다.


백신 Vaccine이라는 말은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라틴어로 암소를 의미하는 ‘바카(vacca)’를 차용하여 쓰다가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가 Vaccine이라고 명명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세상은 천연두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정도로 제너의 종두법이 인류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으며 천연두 정복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백신 보급을 통해 생사를 극복했고 수명을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영광을 엉뚱하게도 전쟁의학이자 응급의학에 불과한 현대의학이 그 자리를 독차지하고 말았다.


미시계의 생명은 경소단박輕小短薄 할수록 고등생명체이다. 곰팡이 균 박테리아 바이러스로 갈수록 변이와 전파가 용이하다. 거시계라고 하는 세상에서 시각문명으로 성공한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미시계의 강자들과 만나면 일단 당황할 수밖에 없다. 보이는 적만 상대하다가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 하는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 결과 결국 인간들은 자기들의 장기대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바라보면서 이 방법 저 방법을 총동원하면서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만큼의 대처법을 우리에게 강요하면서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시계의 최강자답게 치고 빠지면서 유행에 유행을 거듭하고 변이에 변이를 더하면서 인류를 우롱했고 인류가 만든 단백질 기반의 백신을 조소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위세를 떨치다가 때가 되어 사라졌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이기고자 했던 인류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자원을 소모하고도 상처뿐인 영광을 맛보면서 그래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는 위안 만을 남긴 체 제너가 성취한 천연두 박멸의 명성을 차용한 그 이름, 암소에서 유래한 백신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코로나 백신을 흰 소의 해 신축년 2021년도에 미친 듯이 개발하고 미친 듯이 접종하면서 수많은 인류를 집단면역이라는 미명아래 집단접종 실험을 강행하면서 서툴고 무자비한 광기를 유감없이 감행하였다.


2020년 12월부터 시작된 백신 접종이 2021년부터 가속화되면서 4월 23일까지 10억 명 이상이 맞았고 그 결과 1월 초에 코로나19 감염자 수 증가세가 한 차례 절정을 찍고 꺾였다. 그러나 인도, 브라질 등의 일부 국가에서부터 더 치명적이고 감염력이 높은 델타 변이 등 변종 바이러스가 연이어 나와 백신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에까지 다시 창궐하였는데, 이때까지는 감염 재생산 지수가 집단면역이 아주 불가한 수준까진 아니었고 치명률도 높은 편이라 집단면역을 목표로 방역을 실시하였다. 2021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한 거리 두기가 계속 유지되었고 2020 도쿄 올림픽과 UEFA 유로 2020, 2020 두바이 엑스포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모두 1년 연기하여 2021년에 열리게 되었다. 유로 2020은 유럽의 높은 백신 접종률을 믿고 관중을 입장시켰으나 델타 변이로 인해 많은 감염자가 나왔고, 결국 도쿄 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으로 진행되었다. 여름철에 대한민국은 낮은 백신 보급율과 방심으로 4차 대유행을 초래했고, 일본은 무리하게 올림픽을 개최하다 의료 체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에까지 직면한 것은 물론 엄청난 재정적자까지 가중되었다. 이후 백신접종이 속도를 내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접종률 70%를 달성하여 독감처럼 코로나19와 공존하는 단계적 일상회복에 들어섰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11월 1일부터 대한민국도 단계적 일상회복에 돌입하였지만, 11월 9일에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되면서 전 세계가 다시 봉쇄의 고삐를 조이기 시작했다. 2021년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은 해로, 무려 353만여 명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사태의 절정을 보낸 시기이기도 하였다.


1961년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발이 된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지 60년, 흰 소의 해라고 하는 신축년이 60 갑자를 거쳐 다시 돌아온 2021년 신축년에 대한민국은 거시계 세상에서는 눈부신 산업화를 통한 압축성장을 거듭하여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했으나 총을 들어 한국 전쟁을 겪기도 했고, 쇠도 만들어 제철보국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수출입국의 기치를 높이 올렸지만 미시계의 강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진화된 균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총, 균, 쇠의 서사가 힘을 발휘했던 한 해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미시계의 섭리가 거시계의 원리를 압도하면서 2021년 흰 소의 해 신축辛丑년은 백신과 함께 저물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윤 해 록] 백년전쟁 120, 트윈데믹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