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 사라져간 전우, 살아남은 용사

by 윤해

나가 있고 나라가 있는 것이 평시의 정의이다. 이와 다르게 나라가 먼저고 나는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상황이 거친 외교가 난무하는 전시상황이다. 전시는 총력전이므로 나와 너는 나라를 위하여 뭐든지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우리 모두를 내 몬다.

거친 외교인 전쟁은 모든 외교적 수단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나라의 명운을 걸고 나와 너를 죽음의 전쟁터로 가차 없이 데리고 가는 무자비한 국가폭력의 끝판왕이다. 하물며 나의 고국이 침탈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타국의 전쟁터로 내몰린 참전군인들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를 떠올리면 일단 마음이 숙연해진다.

강대국들은 워게임을 통해 세계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국의 패권과 이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며 국제관계에서 피아를 구분하며 동맹과 적을 솎아내려 하겠지만 약소국들은 거친 외교인 전쟁의 상황에서 살얼음을 밟는 심정으로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가를 면밀히 저울질하면서 거친 외교의 장에서 자국의 이익을 한 뼘이라도 신장시키려고 애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모는 참전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6.25 전쟁은 참전국의 수나 사상자의 규모, 전투기간으로 따지면 2차 대전 이후의 전쟁 중에서는 매우 커다란 전쟁이었다. 2021년 미국 제대군인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통계 기준 1,789,000명이 참전하여 36,574명(전투 중 사망자: 33,739 비전투 중 사망자: 2,835)의 미군 사망자가 나왔으며, 103,281명이 부상을 입었고, 약 7,200명이 포로가 되고 1000여 명이 실종자로 처리되었다.

"우리가 귀국했을 땐 퍼레이드 따위가 전혀 없었다. 그냥 제대해서 직장으로 갔다".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회장 샐 스칼래토의 회상이 6.25 전쟁의 성격을 한마디로 압축한 멘트는 아니었을까?

이처럼 Forgotten War라고 하는 6.25 전쟁을 부르는 이름과 같이 한국은 물론 수많은 UN군과 미군을 비롯한 16개 국가들이 모여들어 피를 흘린 전쟁이었지만, 베트남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에 비하여 주목을 받지 못한 한국전쟁은 냉전 초입에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막기 위해 3년간 수많은 젊은이들의 귀중한 피를 흘리고도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공은 제한전으로 일관하다가 도로 38선 부근에서 휴전선을 그으며 마무리하는 어정쩡한 결말까지 도무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한반도를 초토화하였는지 영문도 모르고 사라져 간 전우와 그들을 죽을 때까지 기억해야 했던 살아남은 참전 용사들은 죽기 전에 반드시 대답을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1951년 1월 LST(상륙함)를 타고 인천 월미도를 통해 한국전에 투입된 17세의 참전용사 제롬 골드가 무려 74년 만인 2025년 6월 1일 인천공항을 통하여 입국하였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용사가 전장에서 함께 싸우다 사라져 간 전우들을 평생 잊지 못하고 구순의 노구를 이끌고 호국보훈의 달에 대한민국을 찾았다. 노구의 참전용사가 내뱉은 일성은" 그땐 온통 검게만 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밝고 평화롭다니 내가 다시 이곳에 서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구먼"이었다. 비단 제롬 골드 참전용사뿐만 아니라 잊힌 전쟁,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수 십만의 참전용사들의 뇌리 속에는 젊은 날 목숨을 걸고 머나먼 타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했던 전우와 그들이 함께 피와 살이 터졌던 한반도라고 하는 전장을 그들의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도저히 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의 전장, 대한민국을 수십 년이 흐른 후 방문한 노구의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보인다고 한다. 초토화된 잿빛 하늘 시커먼 포탄연기로 자욱했던 그들의 젊은 날의 대한민국이 평생 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는데 다시 방문한 밝고 번영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청춘에 사라져 간 전우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평생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전쟁의 상흔과 트라우마에 괴로워했던 살아남은 자신의 영혼도 함께 정화되는 카트라시스를 동시에 느낀 그들의 눈물 속에서 발전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예로운 훈장과도 같은 의미로 그들에게 다가왔으리라 짐작된다.

평시나 전시나 인간은 의미를 먹고사는 존재이다. 더구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의 기억은 그 의미를 아마 이루 헤아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스무 살 남짓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인생의 시계는 살아남은 자나 죽어간 자 모두 1950년 그때 전쟁의 한복판 어딘가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참혹했던 기억의 편린들이 평생 살아남은 자들을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로 그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참전용사들의 노구가 대한민국에 한 발을 내 디디는 그 순간 그들이 그토록 잊고 싶었던 잊힌 전장이 번영되고 밝은 선진국으로 환골탈태된 모습에서 그들은 결코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역만리로부터 달려와 목숨을 바치며 우리를 위해 싸워준 한국전 참전 16개국의 참전용사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그들에게 빚을 갚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어 그들의 희생이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값진 희생이었음을 우리가 증명해 내는 지난한 숙제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하나하나 어깨 위에 있음을 2025년을 사는 우리들은 과연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심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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