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 회고와 일상 그리고 예지

by 윤해

뇌가 인지하는 의식의 흐름은 뇌가 만들어낸 일종의 허상,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우리의 인식체계 안에 밀어 넣기 위하여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시제의 개념을 창조하였지만 실상의 세상은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하는 일상의 도, 즉 백성일용즉도가 지배하는 오늘만을 살 수 있을 따름이다.

말과 글로 뇌정보 세상을 만들고 수학적 가정으로 자르고 자른 과학 문명을 꽃피우면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유일한 실상인 오늘에 삼매 하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라는 흘러가 버리고 다가오지도 않을 허상에 집착하면서 지금 여기 이곳이라는 현재를 느끼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것이다.

회고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뇌정보 흐름에 자기를 맡기는 행위이다. 과거라고 하는 허상으로 돌아가 뇌의 시냅스가 만들어내는 어두운 기억의 편린들을 꾸미고 조작하여 한 편의 각자의 미시사를 만들어 내는 행위야말로 뇌정보 세상에서는 보편적 가치이며 자연스러운 기억조작을 통하여 현재의 무위를 설명하려는 도구로써 꽤 쓸모가 있어 보인다.

일상은 날마다 마주하는 현실이다. 이 현실은 머리와 몸이 협업하면서 뇌정보와 유전정보를 함께 사용하여 행동으로 실상의 세상을 개척하는 백성일용즉도라고 하는 현실만이 대를 통해 끝없이 이어가는 생명줄의 고속도로라고 한다면 실감이 날 지 모르겠다.

예지는 오지 않은 현실에 대해 염려와 기우 그리고 불안이 뒤범벅이 되어 스스로 희망보다는 암울한 미래에 솔깃해지는 유전정보 차원에서 개별생명의 유한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뇌정보 차원의 몸부림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렇게 과거로의 회고, 미래를 향한 예지 모두 뇌가 영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착각과 착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현실을 살기가 너무 고단하면 우리는 바로 실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세상으로 이동한다. 즉 유한한 수명이라고 생명의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불멸의 기억이 숨 쉬고 있는 가상의 세상으로 이동하여 생존하려는 비상한 본능이 발현되어 우리를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와 미래로 순간 이동 시키는 것은 아닐까?

베란다 서재 ‘천고당(千顧堂)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며 천 번을 돌아보는 글벗이 보내온 오우가五友歌를 한번 들어보니 실상에서 가상을 보고 현실에서 과거를 회고하고, 오늘에서 미래를 예지 하는 재미도 꽤 쏠쏠해 보인다.

새벽녘 붉은 여명의 오묘한 빛깔이 내리 깔리는 베란다 서재 천고당(千顧堂)에서 오늘을 시작하는 글벗이 봄날 메밀꽃처럼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이는 아카시아에서 뿜어지는 달콤한 향을 맡으며 현재를 느끼고 인왕산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유년의 추억을 상기하며 과거를 회고하고, 늦더위로 온몸이 지쳐 버틸 힘마저 소멸할 무렵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마치 지리산 천왕봉처럼 손에 잡힐 듯 휙 지나가는 모습에서 쏜 화살처럼 사라지는 현실의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문득 옛 친구가 불현듯 나타날 것만 같은 쓸쓸한 오후 은행잎마저 노랗게 물든 가을날을 오뉴월 염천에서 예지하고 있는 글벗의 오우가五友歌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회고와 일상 그리고 예지를 넘나 든다고 느끼는 것은 정녕 실상에서 가상을 꿈꾸는 나의 오래된 습의 발현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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