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 파이팅, 싸움의 의미

by 윤해

살아오면서 한 생을 통해 우리들이 가장 많이 들어본 응원구호를 꼽자면 단연코 파이팅 화이팅 일 것이다. 영어 단어 fighting이 응원 구호로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Go~ , You can do it!, You got this! "넌 할 수 있어!"라는 의미로 자신감을 북돋는 표현이라고 에둘러 설명해 보거나 "Break a leg!", Good luck!"등 시험·면접 등 행운을 빌어주는 표현으로서 공연·시험 등 긴장된 상황에서 "잘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Fighting"은 스포츠 경기나 전투 상황에서만 적합하며, 일상 응원으로 사용할 경우 오해를 일으킬 개연성이 아주 높은 응원 구호라고 영미권 언어 사용자들은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지만 상황을 불문하고 튀어나오는 응원 구호는 늘 파이팅 화이팅이 되기가 십상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처럼 언어는 그 공동체가 지나온 역사를 반영하며 심지어 결핍된 과거의 욕망까지도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 대변한다.


대부분은 국가가 되겠지만 어느 한 공동체의 멸망이나 망국이 문서 한 장으로 결정되는 예는 흔치 않다. 보통은 피 터지는 전쟁을 통하여 승패가 결정되고 그렇게 정해진 승패에 따라 자연스럽게 휴전이든 종전이든 문서로 된 조약이 체결되면서 국가 흥망이 결정되는 것이 근대 이후 국가 흥망사의 공식임에도 불구하고 500년 역사의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갈아탄 지 5년 만에 을사조약이 맺어지면서 국권이 박탈당하고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경술국치를 당하면서 거악의 일제에게 멸망당하는 대한제국 망국사는 그야말로 총 한번 못 쏘고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면서 눈 뜨고 코 베어가는 희한한 망국을 경험한 것이 20세기초 우리 민족의 서글픈 운명이었다.


경술국치 이후 십 년이 가기 전에 1919년 3.1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만주와 연해주를 근거로 한 독립군들이 조직적으로 무장하였고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와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독립군은 일제의 간도 토벌작전을 피해 러시아로 몰려들었고 적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치열하게 내전을 벌이고 있던 러시아 혁명의 혼란 속으로 깊숙한 한 발을 들이밀면서 1921년 6월 러시아 스보보드니에서 발생한 전투로 시작된 자유시 참변의 여파로 대한독립군단 소속의 독립군과 상하이파 독립군 1,500명 중 대략 600여 명이 사망하고, 917명이 체포되어 독립군들은 무장해제 당하고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의 항일 무장 투쟁은 궤멸의 수순을 밟으며 몰락해 갔다.


이처럼 싸워보지도 못하고 망국한 망국의 한을 풀고 국권을 되찾기 위해 조직된 무장 독립군 세력들은 욱일승천 하던 거악의 일제와 러시아 혁명에 휩쓸리면서 하루아침에 무장해제 당하고 그나마 살아남은 소수의 무장 세력들은 만주의 비적 수준으로 전락하였고 언제나 그렇듯이 약삭빠른 자들은 이념을 등에 업고 그나마 남은 동족과 동지를 팔면서 급격하게 열강의 주구로 탈바꿈되는 무장독립 투쟁의 암흑기가 열리고 있었다.


독립전쟁의 방식도 1932년 매헌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커우공원 의거에서 보듯이 당랑거철의 방법으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넘어 각자도사各自圖死하는 극강의 가성비라고 하는 비장한 파이팅으로 그나마 실낱같은 명맥을 이어간 것이다.


파이팅 코리아의 원류가 이렇게도 슬프고 비장한 독립전쟁의 역사에서 출발했는지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도 싸우지 못하고 망국한 망국의 한은 삼천만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졌고, 그러한 결핍은 한민족의 트라우마가 되었으며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파이팅이라고 하는 전투 본능을 일깨우고 있었다.


거악의 일제에 의해 야기되었던 한민족의 전투본능은 불운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이없는 민족상잔의 6. 25 전쟁을 통해 분출되었으며 결국 한반도는 싸우면서 지켜낸 남북한이라고 하는 분단되고 휴전된 조국으로 두 동강 나고 말았고 원도 한도 없는 체제경쟁을 통하여 싸우면서 건설한 파이팅 코리아라고 하는 번영된 대한민국을 기어이 만들고야 말았다.


백 년을 넘어 싸우고 싸워 오면서 파이팅 코리아를 만들어낸 전투민족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특별하다. 합의를 야합으로 간주하면서 오로지 싸움을 통해서 획득하는 파이팅 화이팅이 국가를 집어삼키고 분열과 갈등의 기폭제로 작동되면서 국가와 국민이 멍들고 있다. 씻김굿을 하든지 트라우마 치료를 하든지 이제 더 이상의 파이팅 화이팅은 응원구호가 아닌 분열의 구호가 되기 십상이다.


싸우지 못해 망국한 한은 이제는 풀어야 할 때도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국민단합의 응원 구호도 이제는 Go~ , You can do it!, You got this! "넌 할 수 있어!"라는 의미로 자신감을 북돋는 표현을 사용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행운을 비는 굳럭 Good luck이나 잘했어 가자로 응원구호가 바뀌면서 파이팅 코리아가 Go~코리아나 Good luck 코리아로 바뀌는 그날을 한 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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