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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성동격서聲東擊西, 성실격가聲實擊假

by 윤해

1941년 12월 7일 전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기습공격을 감행한 진주만 공습의 결과 하와이 진주만 미군기지가 초토화되고 40분 후에 주미 일본 대사가 일본 본국정부의 선전포고 암호문을 해독하고 미국정부에 선전포고문을 전달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명운을 갈랐던 미국과 일본 간의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다.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립을 지키며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구가하던 미국이 일본의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 선제공격에 경악하고 분노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결정지은 태평양전쟁이었으며 결국 일본의 기습에 이은 선점先占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인생이 한두 가지 요행이나 행운으로 결정되지 않듯이 전쟁도 기습공격과 같은 선빵으로 아주 잠깐 유리한 지점을 선점先占할 수는 있겠지만 총력전이라는 전쟁의 속성은 결국 전쟁당사국 간의 국가역량에 의해 최종적인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전쟁이란 어떤 지점을 선점先占하고 선점先占한 점을 이어 선을 만들면서 선점線點하고 선점線點한 선을 이어 면面을 만들고 면面을 이어 공간空間을 획득하여 유의미한 시간時間 동안 인간人間들이 공간空間을 점유占有 하는 일련의 사건과 행위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이처럼 전쟁에서 점과 선은 마치 인체의 세포와 혈관과의 관계다. 단세포가 아니라 다세포 생물에게 있어 세포와 세포를 이어주며 영양과 산소를 운반하는 혈관은 생명유지에 절대적이며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듯이 교두보라고 하는 어떤 지점을 확보한 군대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점과 지점을 연결시키는 병참선이라는 선의 확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쟁의 기본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동쪽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 7함대 소속의 애리조나 전함을 비롯한 수많은 전함을 침몰시키고 지상에 착륙해 있던 미군의 수많은 비행기를 격납고와 활주로 위에서 파괴시켰던 일본의 제로센零戰 함상전투기 편대도 미처 몰랐던 것은 진주만 병참기지에 보관되었던 6억 배럴의 석유시설을 폭파하지 못했고 훈련을 위해 자리를 비운 미해군 항공모함을 격파하지 못하고 절반의 성공을 자축하는 불꽃놀이를 마무리하고 그들의 본대 항공모함으로 귀환했지만 일제의 진주만 기습은 오히려 미국이라는 잠자는 거인의 귀싸대기를 갈기며 절대로 상대하지 말았어야 할 적을 만들었다.


비록 일제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서쪽으로 진군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연합국 식민지를 점령하면서 석유와 고무와 같은 전쟁수행의 필수재를 확보하는 병참선을 구축하고 선점의 승리에 잠깐 취했지만 이 선점은 독과 같은 부메랑이 되어 전선과 병참선을 늘리고 교두보를 약화시키면서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바꾸어 전쟁의 승부를 돌려놓았다.


유사 이래 전쟁을 통해 탄생된 제국과 그들이 행사하는 패권은 마치 인체의 혈관과도 같은 선을 늘려 인체의 세포와도 같은 점을 연결하는 능력으로 유지된다. 결국 패권전쟁의 승부도 어디를 선점先占하고 무엇을 선점線點하여 연결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과거의 패권전쟁은 실체가 뚜렷이 존재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패권전쟁은 피아의 구분도 실체와 정체도 모호한 채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더 이상 점은 실상의 지점이 아니라 가상의 폰점 phone點이 될 것이며 이제 더 이상 선線은 병참선線이 아니라 스타링크와 같은 인터넷선線이 될 것이라는 사이버 세상 속의 가상 전쟁의 전운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선점先占하고 선점線點하여 연결하는 전쟁의 패러다임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무엇으로 어디를 연결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손자병법은 그 동쪽이 진짜 동쪽이 아니고 그 서쪽이 진짜 서쪽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동격서聲東擊西가 성실격가聲實擊假로 바뀌고 있는 미중 패권전쟁의 점입가경은 1차 도련선이라는 실상의 선線을 구축한다고 난리와 너스레를 떠는 미국도 진정한 패권전쟁의 승부처는 후발국의 이점으로 겁나게 실상이 아닌 가상의 사이버 초한전超限戰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부상을 한시라도 늦추기 위해 사이버 전쟁의 쌀과 같은 고성능 반도체 주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여름 대낮에 낮잠 자다가 강 건너 불구경처럼 문득 스치는 생각 한 자락에 냉소와 실소가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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