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장_받아들이기만 하는 자

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by rio



1장. 신체의 자가 구속 — 받아 들기만 하는 자


인류는 진화의 모든 순간을 ‘움직이며 느끼는 존재’로서 살아왔다. 돌을 쥐는 손에서부터 길을 걷는 발, 어둠 속을 더듬는 눈과 귀, 누군가를 안는 팔까지 신체는 인간의 감각이자 사고이며,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신체를 스스로 구속하는 문명의 궤도 위에 있다. 기술은 더는 도구가 아니라 몸의 대체물이 되었고, 우리는 점차 몸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삶, 손으로 청소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직접 만지지 않아도 물건을 살 수 있는 세계. 이 모든 것은 신체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감각을 차단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강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 몸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이 선택은 신체의 경험과 감각을 잠식해 버렸다. 세계는 더 이상 직접적인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는 기술이 정제해 준 감각만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 익숙함은 깊은 착각이다. 신체의 경험이 줄어들수록, 인간은 점점 현실에 대해 둔감해진다. 현실의 무게와 질감은 사라지고, 감각은 추상화된다. 존재한다는 감각은, 살아있다는 진동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우리는 몸의 움직임을 잃으면서, 감각의 마찰음도 잃었다. 이러한 상실은 필연적으로 사고의 기반까지 붕괴시킨다.





생각은 몸에서 나온다. 걷고 만지고 느끼는 그 경험이, 언어 이전의 감각이, 사고의 뿌리를 이룬다.

신체의 자가 구속은 단순한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기초를 약화시키는 디버프이다. 기술은 인간에게 감각의 대체물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용’ 일뿐이다. 감각은 직접적인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것이고, 신체는 그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신체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으로 취급하며, 기술에게 그것을 위임한다.


이제 인간은 ‘보는 자’에서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로 이행하고 있다. 눈은 스크린 앞에서 멈추고, 손은 리모컨 위에 안주한다. 몸은 기술의 흐름을 따라가는 수동적 주체가 되었고, 그 흐름을 반성하거나 중단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점점 더 한 방향적인 감각 체계로 우리를 가두고 있으며, 감각과 사고, 존재가 분리되는 비극을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의 신체는 단순히 기능이 퇴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자가 구속은 기술과 인간 사이에 감각적 단절을 낳고, 그 단절은 철학적 침묵을 부른다. 감각이 사라진 존재는 철학할 수 없다. 이 장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존재 전체를 침묵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가는 자가 되기를 포기한 듯하다.

편리함이라는 미명 아래

걸음을 멈추고

감각을 멈추며

마침내 사유마저 멈추는 삶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감각의 위축은 단지 물리적 체험의 상실에 그치지 않는다.

몸이 느끼지 않으면,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 사고도 깊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사유 또한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신체의 자가 구속은 곧, 사고의 결핍이라는 더 깊은 어둠을 부른다.

대표적인 사자성어가 생각나지 않는가


"주객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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