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메랑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by rio

애초에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손에 익숙한 것만을 따르게 되는 시대착오적인 성인 남성 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불편함에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더 관찰하고, 고려하여 나에 맞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AI와 기술은 인간의 신체를 점차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은 오래전부터 '몸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말해왔다.

감각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신체적 퇴화가 아니라, 존재의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이 글은 신체를 둘러싼 감각의 위기와 그 철학적 함의를 탐색하며 고찰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을까 한다.




왜 ‘부메랑’인가_ 기술문명 속에서의 철학적 응답


-AI 시대의 인간성과 윤리를 되묻는 철학적 에세이 연재, 부메랑 프로젝트-


산업혁명 이후 기술은 인간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그 발전은 동시에 신체의 퇴화,

사고의 금제, 관계의 단절, 죄의식의 소멸이라는 연쇄 작용을 같이 동반하고 있고 이는 더욱 증대될 것이다.

때문에 이번 고찰은 그 연쇄를 철학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 중에 하나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21세를 지나오는 현시대에 기술문명의 단순한 비판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다.

오히려 이 흐름 속에 인간의 본질이 어디까지 밀려날 수 있는가에 대한 쟁점을 같이 되짚어보는 시간에 속한다.


AI는 인간에게 있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아직까지는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시대적 도구이다. 문제는 AI가 인간의 감각을 대신 느끼고, 판단을 대신 내리며, 관계를 구조화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이 새로운 구조는 우리가 가진 존재의 조건, 다시 말해 느끼고, 생각하고, 책임지고, 타인을 마주하는 능력을 서서히 대체해나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인간을 능동적인 객체에서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 객체로 변모시키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다.


AI 문명의 종착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다시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오래된 물음은 오히려 기술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된다. 이 본질적인 질문은 인류에게

수천 년 간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자기 고찰임이 분명하다.

이 돌아옴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부메랑처럼 멀리 던져졌다가 더욱 명확한 궤도로 되돌아오는 본질적인 현상이다.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며, 소멸이 아니라 재도약이다.

르네상스가 암흑시대 끝에 도달한 회귀의 전성 기였듯, 지금의 AI 시대 또한 문명적 부메랑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자각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다. 그 자각이 이번 글의 목적이며, 지금 우리가 맞이한 문명적 과제에 대한 응답이길 바란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라는 물음을 다루며, 본격적인 사유의 항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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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_ 부메랑 궤도의 문턱에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자각과 윤리를 회복할 수 있을지를 묻는, 부메랑-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낯선 시기에 와 있다. 국지적인 전쟁도, 재난도, 눈에 보이는 파괴도 과거 대비 줄어든 채, 문명이 조용히 인간을 바꾸고 있다. 누구도 죽지 않지만, 사유는 점점 멈추고, 감각은 기술에 맡겨지며, 몸은 더 이상 깨어 있지 않다.


AI는 오늘도 수많은 정답을 계산하고 찾고 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점점 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처음엔 편리해서 좋았지만, 어느새 그것이 기준이 되고, 권위가 되어버렸다.

정답이 너무 많아지자 질문은 줄어들었고, 판단할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다.

생각은 점점 위임되고 있고, 우리는 스스로 사고의 권리를 내려놓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대신 느끼고, 판단을 내리며, 감정을 일정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알고리즘에 의해 조율되고,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간다.

한때는 인간의 손에 들려 있던 도구였던 기술이, 이제는 인간 존재의 구조 자체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대한 기술문명의 흐름은 우리를 다시 본질적인 질문으로 데려가고 있다.

기술이 너무 많은 것을 대신하게 되자, 오히려 인간은 다시 자신에게 묻게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정말 느끼고, 생각하고,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새로운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이 질문을 해왔고, 지금 우리는 마치 그 물음을 부메랑처럼 다시 돌려받고 있는 중이다.

문명은 부메랑처럼 멀리 던져졌고, 이제 다시 우리의 본질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 되돌아오는 궤도 위에 서있다.

지금 무너지고 있는 인간성의 징후를 기록하고, 그 안에서 여전히 회복 가능한 무언가를 찾기 위한 배 위의 노다.


이 글은 어떤 이에게는 조용한 선언처럼 들릴 수 있으며, 또 어떤 이에게는 하루의 끝자락에 쓰는 내밀한 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철학의 외투를 걸친 채 길을 묻는 여행자일 수도 있고, 아직 꺼지지 않은 사유의 불씨를 살피는 작은 불빛일 수도 있다. 혹은 그저 마음속에 머무는, 오래된 질문 하나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에게, 또 아직 사고하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에게 보내는 수많은 대답 중 하나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 한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몸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신체는 과연 생각하는가.

감각을 잃어가는 시대에, 몸은 여전히 사유의 주체일 수 있는가.

그 질문을 품은 채, 다시 한 걸음 내디뎌보려 한다.


프로젝트 : 부메랑_1부의 서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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