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52번째 생일이다. 벌써 52년을 살았다. 학창 시절에 어른들을 보면 ’참 늙었다. 나도 저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이 늙는다는 건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밖에서 만나는 어른은 늙어 보여도 부모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시는 내 마음속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그런 나이이다. 젊은 청년이나 학생들이 보면 늙은 아줌마에 불과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엄마이겠지?‘
생일인 오늘 병원에 혼자 있다. 창밖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끝나면 가을을 알리는 서늘한 바람이 우리의 마음도 시원하게 해줄 것이다. 잠을 잘 때는 반 팔은 벗어 던지고 긴팔 잠옷으로 갈아입고, 얇은 여름 이불은 이불장으로 숨어 버리고, 화사하고 두툼한 가을 이불을 덮게 할 것이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생일날 아침에 내리는 비처럼 마음도 우울했었다. 새로운 병원에는 아직 아는 사람도 없어 더욱 쓸쓸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딸이 카카오 페이로 선물을 보냈다. “부담 갖지 마! 나도 곧 생일이야! Happy birthday”라는 메시지가 담긴 카드와 100,000원짜리 카카오 페이가 온 것이다. 마음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카드에 감동 표현하기가 있어 눌렀다. 내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찌잉— 눈가가 촉촉해요”라는 답을 보냈다.
톡으로 “이쁘니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구나? 딸밖에 없네. 아무도 몰라”라며 웃으면서 답해 주었다. 딸은 바로 “이제 여기저기서 갈 거야. 기다려봐.”라고 말했다. 딸이 아빠와 동생에게 말한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톡이 왔다. 200,000원과 생일 축하한다는 카드가 도착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기가 막혔던 작년 생일이 생각났다.
작년에 남편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일이 되었다. 남편에 대한 기대가 없는 나는 아들이 저녁을 사주기로 했고, 딸이 생일 케이크를 사기로 했다. 딸은 동생이 돈이 더 많다며 동생에게 비싼 것을 넘긴 것이다.
우리는 양고기 집에 갔었다. 남편도 시간 맞추어 와서 같이 합류했다. 양꼬치와 꿰바로우를 먹는데 남편은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양꼬치가 별로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또 시작이군, 뭐가 우리와 당신이 맞겠어? 한정식을 좋아하는 당신과 육식을 좋아하는 우리 세 식구가 맞으면 이상하지….‘라는 생각만 했다. 아들딸과 나는 아무 말 없이 맛있게 먹었다.
아빠는 거기서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한 수입을 말하면서 딸은 100만 원, 아들은 30만 원씩을 주겠다고 했다. 한 번에 주기 힘드니깐 모아서 대학 등록금을 내라는 것이다. 나는 바로 “나는 얼마 줄 건데?”라고 물었다. 역시나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또 상했다. 표현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케이크도 끄고 분위기가 좋았다. 케이크와 저녁값을 내가 결재했기 때문에 결산할 시간이었다. 아들은 저녁값을 카카오 페이로 입금했다. 딸도 케이크값을 입금하면서 재미있으라고 33,333원을 입금했다.
딸은 “아빠! 엄마 생일 선물 줘야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저녁 사려고 했는데 아들이 샀으니 없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는 너무 황당했다. 딸은 다시 “아빠! 현금이 최고야 얼른 아빠도 입금해!”라고 말했다.
“난 현금 없어!”라며 한마디로 거절을 하는 것이다. 딸은 “통장으로 입금하라고….”라고 다시 말했다. 남편은 “엄마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고 현금으로 줄 돈은 없어.”라며 다시 강력히 말하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나 받고 싶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못 들은 척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또 화가 났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기도 그렇고 생일이라고 돈을 달라고 하기도 치사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나 돈 받고 싶어. 보내죠!”라고 말했다. 남편은 “당신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달래?”라며 무시해 버렸다.
나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화가 풀리지 않았다. 톡으로 남편에게 왜 왔냐며 성질을 있는 대로 부렸다. 남편은 거기서도 “돈이 없어서 그 몇 푼 못 받아서 그런 건 아닐 테고….”라며 이해를 전혀 못 했다. 난 더 화가 났다.
가끔 아이들과 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일을 화내곤 했다. 아마 그걸 딸이 이번 생일에 아빠에게 교육시킨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은 끝 가지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저녁에 준비물이 있다며 전화가 왔다. “아들은 엄마 생일 축하 안 해줘?”라고 말하니깐, “축하해. 키보드 어디에 있어?”라며 모든 관심은 키보드에만 있었다. 내일 가면 아들이 저녁을 살 거라는 건 안다. 서운하지만 아빠를 닮은 내 아들의 성격이니 어쩌겠는가?
요즘은 내 아들을 보면서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거의 매일 “사랑한다. 이쁘다. 귀하다. 내 자식으로 태어나 주어서 감사하다 등” 긍정적인 말을 끊임없이 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아들의 부반응이나 어쩔 수 없이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고난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교육의 힘을 이기는 게 있다는 것을….
시댁 식구와의 문제로 서서히 남편과 사이가 멀어지기 전까지, 남편에게도 “사랑한다”라는 말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애정 표현을 했었다. 하지만 충청도의 고지식함과 얼어 죽을 양반의 피를 받은 아들딸 남편은 반응이 없었다.
속이 터져 하면서 “말로 표현해 줘! 대답 좀 해!”라고 말하면, 아이들과 남편은 한 번씩 “응”이라는 대답뿐이었다. 이럴 때마다 “딸! 너는 절대로 충청도 남자 만나지 말고, 자상한 남자 만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사람 미친다.”라고 말하며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린다.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남편과 내가 나은 아들이니 서운한 맘은 감출 수밖에...
2023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