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한가위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라는 말도 있듯이 풍성하고 행복한 명절이다. 하늘도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을 보내고 오라는 듯이 맑고 청명한 빛깔로 우리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고 있다.
나도 오늘은 병원에서 점심까지만 먹고 집에 가서 아이들과 저녁 먹고 병원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일은 큰언니네서 점심 저녁 먹고 쉬다가 올 예정이다. 가족들은 인천 큰집으로 갈 것이다. 생일날 이후로 남편과 어떠한 연락도 안 했다. 와이프 생일보다 중요한 명절은 쉬고 인천 큰집에 갈 거라는 건 안다.
같이 가고 싶지 않다. 인천까지 오고 가는 것도 나에게는 부담이다. 친정엄마도 인천에 계신다. 큰 집에서 오전에 제사를 지내고 엄마 집으로 넘어간다. 엄마 집에서 점심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명절날 코스였다. 이제는 두 집 다 가고 싶지 않다. 두 집을 다녀오면 그 스트레스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힌다.
나를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대한 것 같은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이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나는 더욱 남들에게 잘했다.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 그 죄가 내 자식들에게 몇 배로 간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도 동네 사람들도 나와 가치관이 다른 건지 내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자신밖에 모르는 엄마, 가난에 찌든 가정, 남아선호사상 등에 눌려 우울증이 심했었다. 그때의 내 성격에는 문제가 많았었다. 인정한다. 어린 나는 불안과 두려움을 억제하지 못했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울증이 심해지면 기립성저혈압 증세로 어지러움을 호소하거나 길에서 쓰러졌었다.
원인을 몰랐던 나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알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 가정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였다. 나는 그때부터 나를 변화시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여러 사례들의 치료 과정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치료하려고 했다.
우선 성격부터 바꾸려고 노력했다. 우울했던 나는 점점 밝아졌다. 항상 얼굴에는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말할 때도 웃으면서 말하는 연습을 했다. 옛말에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꾸준한 노력에 현재의 내 인상은 책임질 수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의 말투였다. 사기를 여러 번 당하신 아버지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라고 가리키셨다. 말도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을 자주 쓰셨다. 나도 그런 면이 많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칭찬할 말이 없고 장점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 말은 거짓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듯이 내가 상대를 좋게 보면 상대도 나를 좋게 보게 되어있었다. 점점 나는 어디 가나 인기가 있었고 분위기 메이커가 될 정도로 바뀌었다.
나의 단점은 말이 많고 정이 많다는 거였다. 어렸을 때, 부모나 가족의 사랑이 매우 부족했고, 나의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성격이 바뀌면서 호감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속을 다 보일 만큼 솔직했고 내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 이러면서 여기저기서 뒤통수를 끊임없이 맞으면서 마음 아파하며 살아오고 있다.
얼마 전에도 동네의 두 언니가 나 없을 때 뒤통수를 쳤다. 내가 알고 손절하려고 하자 서로가 변명하기 바빴다. 화나면 욕을 잘하는 나는 욕과 막말을 하면서 두 언니에게 “지금처럼 둘이 잘 지내. 가운데 나 놓고 장난치지 말고.”라고 말했다. 그들은 계속 변명하면서 자기 둘은 연락을 이제 안 한다며 서로가 미안하다고만 했다. 용서가 되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내가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럴 수 있지? 내가 인복이 이 정도로 없는 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된 걸까?’ 고민하던 중에 얼마 전 딸과 사주를 볼 때 물어보았다. 사주에 나는 항상 외롭다고 나온다고 했다. 대신 돈이 끊이지 않으니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이나 많으면서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 복도 없고 친인척 복도 없다. 그래서인가? 남편 복도 지지리 없다. 명절 때 큰집도 가고 싶지 않다.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너무 달라서 참고 있다가 오면 화가 올라온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설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변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지금 암 환자이다. 생일 이후로 연락이 없는 남편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시시때때로 숨이 차다. 수술 부위 통증도 예고 없이 수시로 온다. 몸 여기저기서 오는 이상 반응을 체크하기도 바쁘다.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금물이다.
내 복이 여기까지이면 받아들이면 된다. 다행히 잘 커 준 아들딸이 엄마를 인정해 준다. 거기에 만족하면서 오늘의 맑은 날처럼 기쁘고 즐겁게 명절을 지내려고 한다. 나에게는 혼자 즐길 수 있는 읽을 책과 글쓰기라는 매혹적인 일이 기다리고 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현재의 순간을 즐기면서 긴 명절을 지내려 한다.
2023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