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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11. 2023

병원폐업 : 삶의 불확실성과 희망(2)


삶은 때로는 예측불허의 여정이다우리가 살면서 죽음과 자살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돈과 생존그리고 희망과 불확실성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존재한다     


돈이 너무 많아 심심해서 죽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평민과는 딴 세상 이야기로만 들린다.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살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는 매우 중요하다.    

  



갑자기 5일 저녁폐업공고문이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 붙여졌다. 깜짝 놀랐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사건이 찾아왔다. 그날 나는 날씨 변화로 많은 옷을 가져오다 어깨까지 다쳤다. 짜증도 났고 걱정도 되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병원이 폐업이라니? 오죽하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마음이 아프고 아려왔다. 병원에 입원한 후, 한 번도 병원장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병원장을 찾아갔다암이라는 병과 싸우면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본 나는 병원 운영을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어디 가든지 사업장의 손익부터 계산해 본다.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병원의 병상과 입원비, 의료보험에서 나오는 금액, 직원 수, 월급, 월세, 약품비 등을 보면서 수익을 먼저 계산해 본다. 예전 병원들은 도움도 많이 주었다.   

   



지금은 글 쓰고 책 읽고 나와 아이들 미래를 준비하기 바빠서 무시했었다관심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내 일로도 시간 보내기에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병원을 여기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나는 원장에게 계속하라고 말했다.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처음에 원장님은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계속되는 설득에 “자본이 바닥이에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성격 또한 내성적이고 남에게 피해 주고는 못 사는 성격 같았다.      


이야기하는데 내 아들이 생각났다. “선생님제 아들과 성격이 비슷하시군요제가 3개월 안에 회복시켜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방법도 설명해 주었다. 나라는 사람이 의심스러울 수 있으니깐 내 방식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성공한 원장님을 만나러 가지고 했다.    

 

원장님감방 갈 각오로 1년만 해보세요원장님 그 나이에 이거 그만두면 폐인 됩니다페이닥터로 가셔서 언제 이 빚 다 갚겠어요그리고 갈 수나 있겠어요?”라며 심한 말까지 했다원장님은 “퇴원 언제 하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원장님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내년 1월까지는 있을게요. 그 안에 정상 회복하실 수 있어요. 돈이 없으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사정 이야기하세요. 모두들 이해 할거예요. 못하는 사람은 퇴사할 거고요. 이익 나면 저도 20-30퍼센트 주시고요.”라며 마지막에 웃으면서 제안도 했다.      




원장님은 오후에 다시 만나자며 퇴원하지 말라고 했다. 오후에 다시 가서 다짐받았고 원장님도 마음의 결정이 끝났었다. 내일 퇴원 안 해도 된다는 안도의 숨을 돌리고 침대에 8시부터 누웠다. 기운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일부터 여수 여행도 가야 하는데 몸이 너무 지쳤다. 책 읽기도 글쓰기도 포기하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12시 넘어 잠깐 자고 아침 식사상이 들어와서 일어났다.  




밖에서 웅성웅성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보았다. 내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실로 가서 “선생님들! 굿 모닝! 아침부터 왜 내 이름이 이렇게 들릴까요?”라며 웃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가장 나이 많은 간호사가 “원장님 다시 폐업하신대요문자가 새벽에 왔어요번복 안 하신 데요.”라며 나에게 문자를 보여주었다. 갑자기 짜증과 화가 함께 올라왔다. 짐을 뺄 생각에도 짜증이 났고 다른 병원 알아봐야 하는 것도 화가 났다.  가장 큰 화는 말을 바꾼 원장에게 화가 났다. 




오늘 여행도 가야 한다. 오늘 함께  여행 가는 언니들과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장님과 다시 이야기도 해야 했다이렇게 그만둘 수는 없었다이 아까운 병원과 원장님의 손길이 다 묻어 있는 병원을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그분에게 너무나 큰 상처이다물건 하나하나에 원장님 손길과 정성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나라면 미칠 거 같았다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상태였다.     


원장실로 찾아갔다. 원장님과의 대면에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계셨다. 내가 생각한 이미지보다 훨씬 더 착해 보였고 마음도 여려 보였다. 가슴이 미어졌다. 말하기가 두려웠다. 눈에는 벌써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이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원장님! 안 되겠어요?”라고 물었다. 아무 말이 없다. “원장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너무 아깝잖아요. 다른 계획이 있으세요? 그러면 제가 뭐라 못해요.”라고 다그쳤다. 이렇다 저렇다 어떻게 또 해요저 할 일이 많아요라며 컴퓨터 자판에 손을 올려놓았지만타이핑은 치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다시 번복하셔도요.”라고 말하면서 기다렸다. 목이 메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비용을 따져 보고 다시 한번 우리 해봐요.”라고 말하자,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자포자기의 얼굴이었다. “이런 결정하시는 원장님 마음은 오죽하시겠어요애 많이 쓰셨어요그동안 감사했습니다아쉽네요너무 편히 잘 있다가요안녕히 계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나오며 마주한 간호사도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고여있었다.   

  



서로 아쉬워하며 인사를 하고 아침 먹고 짐을 차에 실었다. 마지막까지 간호사들이 다 도와주었다. 1층 업무과에서 연락이 왔다. 계산하고 보험 신청하고 점심 먹고 퇴원했다.      


집에는 귀한 아들딸들이 엄마 짐을 옮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다 옮기고 나니 기운도 빠지고 여행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2달 만에 나온 생리 때문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어깨도 너무 아팠다.      


딸에게 라면 하나면 끓여달라고 해서 먹었다감사했다. 항상 내가 해주기만 했던 자식들이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해 주고 아들이 설거지를 해줄 정도로 다 컸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여행길에 올랐다.   

   



2박 3일의 여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어깨가 너무 아파서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딸을 깨워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찾아 먹고 잤다. 통증이 심해 늦게까지 누워있던 나는 일어나 시험 보는 아들을 학교 보내고 사우나로 향했다. 통증이 가라앉질 않았다. 이대로 집에 있으면 아이들에게 민폐가 될 거 같았다.     


여행 가기 전에 전화해 본 요양병원으로 간다고 예약하고아이들 점심을 위해 생고기 집으로 갔다아이들은 식사 후에 집으로 가고 나는 병원으로 왔다.  

    



아이들과 헤어진 후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언제까지 이러고 다녀야 하는지? 사는 게 뭔지? 몸은 왜 이렇게 매일 부담스러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내 환경을 되돌아보았다. 그래도 나름 감사했다살아있고의욕도 있다내가 원하는 만큼 공부는 잘하지 못하지만항상 긍정적으로 나만 아는 자식도 둘이나 있다부자는 아니지만내가 먹고 쓰는데 걱정없다는 것도 감사했다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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