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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13. 2023

암 투병 생존기 : 가치관, 건강, 돈과의 싸움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맞이하는 가을 아침은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이 마음속까지 뚫어주는 편안함을 선사해 주고 있다. 며칠 만에 다가오는 가을하늘인가? 창문이 없는 답답한 방에서 이틀을 보내면서, 숨이 막히고 어지러움에 견뎌내기 어려웠다. 감옥과 같다는 느낌이 이 말인가?    

 



기존의 요양병원 병원장의 자살로 폐업하여 여수 여행을 다녀온 후, 새로 생긴 요양병원으로 옮겼었다. 폐업한 병원에서 많은 환자가 갑자기 몰려들자, 새로 간 요양병원은 환자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아픈 팔은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지만, 석회를 없애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체외충격파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장님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치료나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식사 또한 갑자기 늘어난 환자 덕에 엉망이었다. 이틀 동안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대변 또한 보지 못했다. 창문 없는 방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뭔가 답답하고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어제도 계속해서 숨이 막히고 답답하니 병실을 빨리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방을 꾸미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답변만 왔다.     

 



핸드폰을 보는 도중에 다른 요양병원에서 “병원 잘 결정하셨나요? 치료 잘 받으시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니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마음이 끌렸다. 가면 식사나 시설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한 답변이 바로 왔다.     


이 정도로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상담사가 있다면 가 볼만하다는 판단이 섰다. 망설임 없이 곧장 출발했다. 시설은 오래된 건물이라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산속이고 편히 쉴 수 있어 보였다. 식사 또한 깔끔하고 만족스러웠다. 반갑게 맞이해 주신 간호부장님 또한 인상도 좋으시고 편안했다.

    



몸이 편하지 않아 짐을 싸고 푸는 것도 일이었지만, 주저 없이 병원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기존 병원에서는 일주일만 더 있어 보라고 권유했지만, 지금 나에게는 편안한 휴식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은 나는 마음이 급했다.      


폐업한 병원에서 같이 온 환자들 상태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가 공기도 안 좋고 부실한 식사에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게 보였다. 겁이 났다. 조금만 면역력이 떨어져도 회복할 힘이 없는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병원에서 짐을 풀고 간호부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고인이 되신 원장님 이야기가 나왔다. 간호부장님은 솔직히 이 병원도 적자가 많다고 했다. 고인이 되는 원장님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병원 실정을 이야기 해주었다. 대책 없이 늘어나는 암 요양병원들 덕에 경쟁은 치열해지고, 재정 악화를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 말에 공감했다.   

  



처음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런 요양병원이 거의 없었다. 요양병원 하면, 나이 드신 노인분들이 건강을 회복하거나 돌아가시기 전에 걸쳐가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몇 년 전에 친구와 헤어지고 택시로 치료받는 요양병원을 간 적이 있었다. 계산하고 내리는데 기사님께서 “부모님이 많이 안 좋으세요?”라며 걱정스럽게 물어보셨다. 나는 웃음으로 답을 하고 내렸지만, ‘이게 요양병원에 대한 인식이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을 했었다.

     

몇 년 사이에 암 요양병원은 전국 곳곳에 생겨났다. 공기 좋은 곳은 기본이고, 훌륭한 식사, 호텔과 같은 분위기로 암 환자들을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환자들이 치료해야 하는 금액이 줄어들긴 했지만, 모든 치료가 비보험이라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에는 금액이 만만치는 않다.     


실비보험을 가지고 계신 환우는 대부분의 비용을 보험회사가 지급해 주기 때문에 환자들의 부담이 덜하다. 실비보험도 가입 당시의 보장 범위와 보험 가입 금액에 따라 달라서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이 이야기는 보험 편에서 다시 다루어 드릴 예정이다.  

   



내가 암으로 10년간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돈이 있으면 좀 더 오래 편안히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암이란 병은 돈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다고 자랑하면서 나를 따라 치료한 언니들이 여러 사람 계셨다. 암 수술을 몇 번씩 하고도 밝은 내 모습이 부러웠던 것이다. 나는 여러 병원에 다니면서 배운 지식과 생각을 설명해 주고, 그들에게 맞는 치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시해 주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자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상위 1%라고 자신하는 부자들도 자신만을 위해서는 선 듯 돈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골프용품, 명품 가방, 신발, 자동차 등 남에게 보이는 것은 금액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구매하지만, 막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의료기구나 치료 약에는 돈을 쓰지 못했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죽으면 그 돈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왜 저러지? 돈 자랑을 하지 말든지?’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었다.     




한 언니는 내가 봐도 반년을 넘기기 어려웠다. 본인도 똑똑해서 알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부정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평생 살 거처럼 아끼면서, 내가 구매하는 의료기구를 볼 때마다 부러워만 했다. 나는,     


“언니! 이게 2백이면 사요?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시지 마시고 사서 마음껏 쓰세요? 효과도 보셨는데 왜 돈을 아껴요? 언니 통장에 돈이 몇억 있고 친정에서도 매달 7백만 원씩 준다면서요? 폐물도 많고 금 괘도 많다며 왜 아껴요? 죽으면 끝이에요. 이거 안 사고 아꼈다고 자식들이 알아주지 않아요.”라고 말하자,

나 죽으면 다 버려야 하잖아. 짐이잖아.”라며 대답하는 표정에는 뭔 상관이야. 웬 잔소리?’라는 듯 짜증을 냈다. 그다음부터는 기계조차 빌리지 않았다.

      



돈이 많은 부자라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돈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가진 돈은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현금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들보다 자신 있고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암 투병 10년간 그래도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살 수 있었던 건 그들과 나의 가치관이 다르기 떄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 삶에 있어 돈은 죽음을 몰고 올 정도로 중요하다. 하지만 필요할 때, 자신을 위해서 쓰지 못하는 돈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병이 들고 알았다.

     



암이 퍼져 병원에서 1년 살기 힘들다는 분들이 가끔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본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돈이 있으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어요. 죽더라도 적은 고통으로 죽을 수 있어요. 해보실래요?”

그러면 대부분은 “오케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들에게 “1억을 옆에 두고 오직 나만을 위해서 쓰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어본다. 대부분은 하신다고 하지만, 1-2천만 원 이상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아끼기 시작한다. 그러다 돌아가신 분도 몇 분 계셨다.      


우리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셨다. 암에 걸리시고 6개월 판정을 받으시고 3년을 사셨지만, 마지막까지 아끼셨다. 실비가 없으신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가시고 싶다고 하셨지만, 비용 때문에 망설이다 집에만 계셨다. 몇 번을 가시라고 권유했지만, 마음처럼 못하셨다.     




돈이 없다면 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까지 자랑이란 자랑은 다 해놓고 돈을 아끼는 어른들을 보면서 마음 아플 때가 많았다.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항상 자식을 먼저 생각했고, 아껴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분들이 많다.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천까지 연결되는 생활로 마지막을, 자신을 위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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