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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17. 2023

변화의 시간 : 세상과 나, 욕망과 현실의 교차로...

     

병원을 옮긴 지 3일째 되는 아침, 창문을 여는 순간 안개가 세상을 덮은 습한 기온이 나쁘지 않았다. 그 순간, 나의 내면에 접근하고자 했다. 안개와 함께 나를 감싸고 있는 삶도 흐릿한 상태였다  

   

아침 식사가 왔지만, 안개를 맞고 싶어 뒷동산을 올라갔다. 마음속 안개도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산에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땅이 질퍽하고 미끄러질 것 같아 포기했다.   

   



점심때, 올 초에 탁구를 같이 치던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 당시 초보라 가끔 치던 탁구가 갑자기 재미있었다. 2월, 집에 있는 한 달 동안 초보를 면해보려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었다. 이때 만난 언니는 체대를 졸업해 모든 운동에 자신이 있었고, 나를 유독 이뻐해 주셨다. 시간만 되면 연락해서 레슨도 해주고 많은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오늘처럼 잊지 않고 연락해 주시니 감사했다.  

   

2월 한 달을 얼마나 즐겁게 탁구를 배웠는지 내 몸이 힘들어 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내 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즐거워 아프지 않을지 알았다. 3주 정도 지나자, 속도 메스껍고, 몸을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이들 식사조차 준비해 주는 게 부담이 되었다. 3월에 다시 입원하면서 몸이 예전보다 더 약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엄청난 생리가 2달에 4번을 하면서 5월 중순까지 꼼짝하지 못했다.

     



항상 웃고 즐겁게 운동을 같이한 언니는 이해 못 했다“갑자기 왜 그렇게 아프지?”라며, 걱정하면서도 항상 웃는 나의 힘찬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말 아파?”라고 물어보셨다. 내 성격이 남들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씩씩하고 잘 웃고 잘 논다병원에 실려 가는 한이 있어도 자식이나 남들 앞에서는 절대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전화로 언니와 대화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될 수 있으면 병원도 안 가려고 노력했다. 정말 죽겠을 때만 갔다. D 병원 한의사님은 병원에 도착해서 씩씩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면서 ‘쉬러 왔구나!’라고 생각했다가 진맥을 보고 깜짝 놀랬다. 계속 쳐다보면서 “일상생활이 가능하세요이 정도 맥으로는 생활하기 힘든데.”라며 믿기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나는,

“제가 웬만하면 오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려요. 그리고 저도 밖에 있고 싶어요. 답답한 병원이 싫어요.”라고 말하면서 웃으니, “어떻게 해 드릴까요?”라는 것이다.  

   

남들은 자주 물어본다. “왜 병원을 그리 자주 가냐고?” 나는 “글쎄? 나도 죽겠네. 나처럼 아파보면 알 텐데.”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지만 해마다 나만 느끼는 약해짐에 나의 성격이 점점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처음 암에 걸렸을 때만 해도 지금과 비교해 보면 에너지가 넘쳤다.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나는 병원도 큰 병원과 서울에 있는 병원만 다녔다. 병원비가 비싸도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곳이 좋았다. 1인실에 혼자 있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다. 집에 오면 친구나 지인 만나러 다니기 바빴다. 병원에서도 힘든 환자들을 도와주느라 혼자 분주했었다. 그렇게 7~8년을 지냈다.     


작년에 코로나 백신 맞고 몸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혼자 있기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처음에는 기운이 딸려서였다. 그러다 동네 언니한테 전염된 코로나로 너무 고생한 뒤로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4번째 수술한 뒤에는 몸이 너무 약해져서인지는 몰라도혼자 있는 게 편해지기 시작했다심심하고 외롭기도 했지만사람들과 있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를 느끼고부터는 TV를 보더라도 혼자 있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  

   



6월에 동네 두 언니에게 배신당한 뒤로는 더 심해졌다. 그러다 7월부터 글을 쓰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렇게 적은데 지금까지 낭비하며 산 것이 아까웠다이제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힘들지 않다마음이 점점 편해지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현재 병원도 다시 송파를 가야 할지 여기에 있어야 할지 갈등을 느낀다. 송파로 가면 공기도 탁하고 좁은 공간에 많은 환자가 있어야 한다특히 항암치료 하는 환자와 있으면 내 몸이 더 약해진다. 반면에 심심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치료를 조금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있는 곳은 공기 좋은 장소와 넓은 공간에서 조용히 글도 쓰고 책도 보면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주위에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가두는 느낌이었다. 치료가 서울만큼 만족 되지는 않지만, 지금은 여기가 편하다. 변화되는 내 모습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     


늙는다는 것일까욕심이 없어진다는 것일까아니면 내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일까?’ 이번 원장님의 자살로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 것일까나 스스로 질문해 본다 

    

병원에 있으니나에게 쓰는 돈도 없다병원에서 밥 조청소해 줘빨래 해줘외출할 일이 없으니옷도 가방도 신발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대학 졸업하고 자신들 갈 길만 가주면, 나 한 명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욕심부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욕심이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변화해 가는 내 모습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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