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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19. 2023

미소의 댄스 : 내가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알아?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친구나 지인들 만나는 것을 자제했다. 병원에 와서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치료받고 시간이 나면 글 쓰고 책 읽고충분한 휴식을 취했다몸이 예전처럼 날렵하지 못하고 기억력도 떨어져 머리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질 않는다피로를 자주 느끼니 움직임에 제약을 받는다.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아끼려고 사람과의 접촉을 더 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으면 외로운 건 있지만장점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행동의 제약이 없다. 남에게 잘 보이거나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신경 쓸 일이 적어진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나를 꾸미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오랜만에 병원 환우들과 댄스 수업을 받았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댄스 강습이 주간에 2번씩 있다. 병실에서 ETF 가입을 위한 교육을 듣고 있는데, 오늘의 댄스 교습이 곧 시작한다는 방송이 들렸다. 산에 가기는 싫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싶어 교습실로 내려갔다. 5분 전이라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은 반가워하면서 스텝을 몇 가지 가르쳐 주셨다. 시간이 되자, 몇몇 환우들이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맨 앞줄에 서게 되었다. ‘에어로빅 장이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는 생각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코로나 이전, 스포츠센터에 다닐 때가 생각났다. 뭘 모르고 처음 가서 에어로빅 수업에 잠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나는 일찍 와서 당연히 맨 앞줄에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오더니 나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처음 왔고 몸치니 뒤에서 하지 뭐!’라는 생각에 뒤로 갔다.    

  

친구가 와서 세 번째 잘 보이는 자리에 나를 세우더니, 

“이 자리가 너 자리 야. 앞으로 누가 와도 비켜주지 말고 잘 지켜. 여기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어. 아무 자리나 가서 서 있으면 머리 잡혀.”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야? 각자 돈 내고 와서 먼저 오면 임자 아니야?”라며 깜짝 놀라 물어보았다. 친구는 웃으면서,

에어로빅하는 아줌마들은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해새로운 사람은 무조건 맨 뒤로 가는 거야. 너는 내가 데리고 왔으니깐, 이 자리에 있어. 누가 뭐라고 하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이라고 말한 게 생각났다.  

    

그때 나는 얼마 다니지 못했다. 몸치이기도 했고 사람이 많아져 병원에 다녀와서 내 자리라고 하기도 그랬다. 뒤에서 따라 하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재미가 없어 그만둔 기억이 난다.

     



여기는 병원이라 처음 온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왔다는 이유로 맨 앞에 서서 수업했다. 춤을 추면서 정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깜짝 놀랐다내 얼굴이 너무 예뻐 보였다. 화장도 안 한 맨얼굴에 하늘색 환자복을 입고 머리를 뒤로 묶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미소 가득하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내 얼굴과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다.     




어렸을 때,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려는 길에서 이쁘다며 따라오는 아저씨가 있었다. 무섭다고 울면서 길에 있는 어른들에게 도와달라고 매달린 적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이리 와 꼬마야.” 하면서 나의 팔짱을 끼고 신호등을 같이 건너 준 적이 있었다. 그 여성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항상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었던 나는 주위에서 가끔 예쁘다고 하면 농담이나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거울로 비친 내 모습이 예뻐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인상을 만들기 위해 얼굴에 미소를 담고 살려고 노력했다. 머릿속에는 자신감을 주입 시켰다. ‘나의 외모는 나쁘지 않다어디 가든 뒤지지 않는다내 인상은 편안하다키가 커서 살이 찌면 멍청해 보일 수 있으니 몸 관리도 해야 한다.’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의 뇌에 세기면서 살았다.      



50이 넘은 지금 남들이 이쁘다고 말해줄 나이는 지났다. 그래도 여자라 예뻐 보이고 싶고 우아하다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오늘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나를 보면서 즐거운 댄스 수업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이렇게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오늘은 유독 사랑스럽다.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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