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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19. 2023

암이 주는 교훈 : 나를 사랑하는 법을 찾아서….


저녁을 먹고, 산책할까? 딸하고 전화할까? 샤워할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현재 내 몸 상태에 가장 이상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찾고 있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몇 년 전, 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만났던 언니다.

     

언니와는 가끔 통화하지만, 한번 하면 1시간은 기본이다. 서로 자신의 비밀을 감추지 않고깊은 이야기로 가득 채운다솔직함이 우리 둘 사이에서는 항상 중요하다나도 속에 있는 말을 거짓 없이 한다. 나야 항상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속없이 이말 저말 하다 뒤통수도 잘 맞는다. 천성인가 부다.   

   



언니는 지방에서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몇 년 전 만날 당시 암 치료를 받으면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고 언니는 몸에 조금만 이상이 와도 과하게 걱정했었다. 그때, 나는 언니에게 ”건강염려증“이라며, 조금만 병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놀리곤 했었다.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 완치 판정도 받았고, 학교도 다시 다니고 있다. 가끔 언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나는 결사반대 했었다.   

   



일을 하던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일을 하다 그만둔 나는 아줌마들 세계에 들어갔다가 많은 딜레마에 빠졌었다. 직장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 아줌마들의 세계에 들어가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상상을 초월한다. 부류마다 다르겠지만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 어울리면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 언니도 아플 때, 휴직하면서 그 혼란을 느꼈다고 했었다. 

     



언니는 나의 현재 상황을 물어보았다. 나는 변화된 내 생활을 말해주었다. 우선, 사람과 부디 끼는 게 싫다고 했다. 푼수같이 예전처럼 사람들과 이야기하고만나러 다니는 게 귀찮고 부담스럽다고 했다만나고 오면 즐거운 것보다 시간 낭비에 몸만 힘들고 남는 게 없다고 느꼈다. 특히 저녁에 만나면 술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렇게 좋아했던 술도 마시고 싶지 않다.      




언니가 아는 나는 많은 사람과 친했을 뿐만 아니라맺고 끊는 게 확실하고 상대방 기분 나쁘지 않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언제나 당당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에 놀라워했다.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그렇지만 남 일에 상관하고 싶지는 않다. 몸이 힘들다.    

  



나만을 생각하고 싶다나를 사랑해 주고 싶고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언니도 요즘 그렇게 지낸다고 하면서 암이란 병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암을 앓고 치료하며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에 나도 공감한다. 내가 만약 ‘암 투병을 안 했다면? 한 번의 수술로 끝나고 완치가 되었다면? 아마 지금쯤 예전의 까칠한 성격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아들딸의 지금 성적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네가 후졌으니, 학교에서 전교 1등은 기본이고, 전국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어와야 한다며, 아이들을 압박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아이들과 나와의 관계는 최악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도 강요하지 않는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의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딪쳐 본 언니와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세상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언니는 주말에 이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경치가 좋은 카페에 가서 디저트 빵과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을 힐링시켜 준다고 한다. 나는 아직 그 정도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병원에서는 나만을 위한 시간과 여유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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