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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21. 2023

긴 시간의 투병 : 힘들고 지치는 일상의 고백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치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병원에서도 정기적인 치료가 없는 날이다. 주말에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집에 가거나 가족들과 외출한다. 남편이 오늘 지방을 간다고 했다. 나도 집에 가서 아이들과 식사하고 싶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밥해 줄 힘조차도 없다. 재수생 딸이 해준 밥을 먹거나, 시켜 먹어야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저께 종로 여행을 다녀왔지만, 아직은 엄마 손과 사랑이 많이 필요한 때이다.

     

아이들이 가장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만 있어 정말로 미안하다. 나의 부재를 위해 남편에게 아이들만 지켜달라고 부탁했었다. 남편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5년이란 시간을 집에서 아이들과 지냈다. 조용하고 차분한 남편 덕에 아이들도 탈선하지 않고 이쁘게 잘 커 주었다.      




치료가 없는 오늘, 나는 하루 종일 링거 주사를 맞았다. 가능하면 맞고 싶지 않았다. 혈관 잡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혈관이 나쁜 편은 아니다. 맞은 곳에 계속 맞다 보니 그 부분의 피부가 질겨져 잘 들어가질 않는다. 오늘도 2번 실패하고, 수 간호사의 도움으로 3번째 성공했다.

     

과거에는 대부분 영양제를 주사로 맞았다. 영양제는 누구나 맞아도 무리가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이젠 영양제도 부담스럽다. 보통 사람은 영양제 250ml를 2시간 정도 맞는다. 나는 숨이 차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20시간 이상을 맞는다. 그것도 저번 병원에서 무리가 왔다. 며칠을 고생했다. 그 이후로는 영양제도 맞지 않게 되었다.

      



아침마다 회진 오시는 원장님은 점점 안 좋아지는 내 모습을 보시고 수액이라도 맞아보면 좋겠다고 권유해 주셨다. 얼마 전, 영양제 한 병 맞고 수액을 1,000ml 나 1,500ml씩 맞으니깐 몸이 좀 수월해지는 걸 느꼈다. 수액은 무리가 없을 거로 생각하고, 치료 없는 토요일에 맞는다고 했다.     


아침 9시가 넘어 간호사실에 주사를 부탁했다. 간호사실은 500ml 하나면 처방이 나 있다고 했다. 1,500ml를 순수 포도당으로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포도당 수액에 비타민 B와C을 섞어서 맞았다.   

   



주사 맞으면서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링거 맞는 꿈을 꾸었다. 주사가 잘못되어 피투성이가 되는 꿈이었다. 놀라서 일어나보니 2시간은 잔 것 같다.      




점심이 왔다.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라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2시쯤 링거를 교체했다. 머리가 또다시 아팠다. 아침처럼 책을 보면서 자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잠에 빠졌다.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 깨어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더 자고 싶었다. 깨지 않고 죽은 듯이 3일만 자고 싶다.      


몸이 약해서 매일 밤 설쳤다. 6월부터는 더욱 심해졌다. 1분도 못 잔 날도 여러 날 있었다. 이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잠만 푹 자도 어느 정도 편해진다. 하지만 몸이 약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렇다고 수면제를 먹고 자기는 무섭다. 오늘 밤은 잘 자야 할 텐데 걱정이다. 낮잠도 자고 링거 주사도 맞아서 화장실도 많이 갈 텐데.     


나처럼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잠자는 걸 걱정하면서 살 줄을 꿈에도 몰랐다. 벗어나고 싶다. 점쟁이 말대로 2년 후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진다는 데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너무 억울할 거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계속 사는 건 의미가 없다. 눈물만 나온다.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아무 이유 없이 평생 고난만 주시는 걸까? 내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 벌을 받는 걸까? 얼마나 많은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는 걸까? 믿을 수가 없다. 금수저는 못되어도 이렇게 힘들게 살라고 세상에 내보내지 않으셔도 되는데.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까?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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