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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Nov 06. 2023

암 환자의 싸움 : 카페인과 건강의 딜레마


비 오는 밤이 지나면서 겨울이 찾아왔다. 뺨에 스치는 매서운 찬바람이 얼굴을 거칠게 만든다. 가을의 얇은 옷에서 두터운 코트나 패딩으로 갈아입는 계절의 바뀜을 느낄 수 있다. 암은 추위를 좋아하는 병이다. 남들보다 암이 잘 발병하는 나는 면역력 방지를 위해 병원 밖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작년 1월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맞고 몸이 편할 날이 없었다. 특히 4번째 수술한 후생리 불순이 더욱 심해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나빠졌다유명한 한의사 말로는 뼈가 사골뼈처럼 약해졌다고 했다. 생리혈에 모든 철분을 빼앗겨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철분제 등 몸에 좋은 영양제를 골고루 먹어서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는 피 수치는 그리 나쁘지 않다.     




카페인을 먹으면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5월 중순에 퇴원한 뒤, 캐러멜마키아토를 먹기 시작했다달달한 맛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정신도 또렷해졌다하루가 길어졌다잠도 줄었다몸도 한결 가벼웠다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녀왔다. 딱 2주간의 소중한 행복을 누렸다    

 



몇 년 전에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아침저녁으로 먹으면 유방암을 예방한다는 기사도 나왔었다그때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잠깐 먹다 몸에 안 맞는 거 같아서 중지했다.      




2주간의 즐거움이 끝나자, 몸은 예전보다 더 힘들었다. 몸이 힘들 때마다 카페라테나 캐러멜마키아토를 점점 진하게 먹었다. 7월에 책 읽기 글쓰기를 하면서 더 자주 마시게 되었다. 암으로 약해진 몸이 커피에 민감해져서 마시면 몸 상태가 더 나빠졌다그렇지 않아도 못 자는 잠을 더 못 잤다     


이번 병원에 와서는 어깨까지 염증이 생기고 석회가 보였다. 몸이 약한 상태에서 엄청난 양의 생리를 한 달에 2번을 하고 나니 더 이상 힘이 없다.

      

커피를 끊었다숨이 차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머리도 짓누를 듯한 통증과 깨지는 듯한 아픔이 동시에 왔다커피를 끊으니 하루 종일 몽롱한 정신이었다.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간헐적인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자꾸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먹을 것도 많은데 커피가 왜 이렇게 그리운 걸까마약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계속 유혹하고 있다. 맑은 정신이 오질 않는다. 가슴이 더욱더 답답해졌다. 소변량이 줄었는데 화장실은 더 자주 간다. 화장실 가는 것도 부담이었다.      




이렇게 1주일 정도 지나자, 의료진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액에 비타민을 타서 링거 주사를 맞아보자고 했다. 영양제도 맞기 힘들 정도의 몸이라약한 수액이라도 맞자는 것이다수액을 맞고 미친 듯이 잤다꿈을 꾸기는 했지만오랜만의 낮잠이었다. 저녁에 못 자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저녁에도 주사 맞으면서 잘 잤다.      




암 환자에게 최고의 치료 중 하나가 마사지이다일반 마사지가 아니라 오일 발라서 하는 경락 마사지가 혈액순환에 최고이다. 아이를 낳고 힘든 여성이나 직장여성들도 경락 맛사지를 주기적으로 받아주면 잔병이 없어진다.      


암에 걸린 후, 많은 의료기기를 사들였다. 해마다 한두 개씩 새로 나온 의료기기를 샀다. 수술을 여러 번 해서 혈액의 흐름을 막는 부위가 많아졌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막힌 혈액 순환을 위해서 손으로 하는 마사지 치료보다 기계를 이용한 치료를 받아야 효과를 본다. 하루에 2시간씩 기계를 돌려줄 간병인을 불렀다.    

  



잠을 자고 싶어 주말마다 주사를 몇 번 맞았다. 신기하게 수액을 맞을 때는 잠을 잤다. 거기다 마사지까지 하

자, 6월부터 못 잔 잠을 한꺼번에 자는 듯했다. 며칠 전에는 12시간을 잤다. '자다 깨다'를 10번 이상은 한 것 같다. 푹 잠을 잤으면 더 좋았겠지만그래도 오래 잤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틀만 깨지 않고 푹 자고 싶다. 내 몸에 있는 모든 피로를 다 벗어 던지고 싶다. 자도 자도 힘들고 지친다. 커피도 내 머리에서 속삭이고 있다. 무엇이 정답일까? 커피를 마시고 맑은 정신으로 사는 것이 좋은 걸까아니면 몽롱해도 밤에 설잠이라도 자는 것이 옳은 걸까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삶이 힘들다. 맑은 정신으로 살고 싶다. 몸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커피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어제 마트에서 만들어진 커피를 사 왔다병원 냉장고에 있다. 없어야 하는데 눈에 안 보여야 하는데 미련을 못 버리고 내 옆에 있다. 지금의 만족을 위해서 먹어야 하는 걸까항상 지금 순간의 행복이 중요한데나를 합리화하는 어린아이 같다.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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