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턱에서, 방학을 맞이한 고등학생 아들과 반수에 돌입한 딸을 둔 우리 집은 이제 한가로움을 즐길 수 없었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나의 일상은 우리가 말하는 ‘엄마의 시집살이’를 방불케 했다.
아침잠이 많은 우리 가족은, 저녁형 인간이어서 하루 세 끼를 먹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두 끼를 세 끼처럼 풍족하게 챙겨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항상 매끼를 걱정하게 된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점심을 생각해 봤다. 문뜩 '쿠우쿠우'라는 뷔페식당이 떠올랐다. 오늘 못 가면 한동안 아이들과 외식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이곳은 우리 가족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일식의 싱싱한 초밥부터, 중국 음식, 이탈리아의 향긋한 피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오늘만큼은 특별하게’라는 마음으로 자랑스러운 아들딸과 함께 연신내점으로 향했다. 길을 걸으며, 아이들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기대감을 보니 내 마음도 설레었다.
도착한 식당에서 우리는 우선 초밥 코너로 갔다. 나는 “밥은 먹지 마. 아들!”이라며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아들은 초밥을 깨끗이 먹었다. 얌체 짓인 줄 안다. 그러면 안 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은 나는 평상시에 잘해 주지 못하는 음식을 샐러드부터 골고루 챙겨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아들은 누나가 먹고 있는 우동을 보고 "우동은 어떻게 먹어?"라며 물어봤다.
나는 "누나야! 어찌 먹니? 딸아! 설명해 주라!"
"가서 면을 달라고 하면 줄 거야. 나머지는 옆에 다 있어."라고 딸이 설명해 주었다.
아들이 우동을 가지러 간 사이 딸은, "엄마 아들은 바보 같아! 말도 못 하고. 잘 가지고 올까?"라며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듯이 말했다.
"딸! 왜 그래? 잘 가르쳐 주어야지. 착해서 그런 거잖아."라고 말하는 내 말에 딸은 코웃음을 치면서, 아들이 어떻게 우동을 가지고 오나 보고 있었다. "그래도 김 가루랑 이것저것을 좀 넣네!"라며 완전 바보는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마음이 아팠다.
아들의 가져온 우동 위에는 김 가루와 유부 등 몇 가지가 떠다녔다.
"울 아들 잘했네. 김 가루랑 이것저것 골고루 잘 넣었네. 나중에 여자친구 만나면 아들이 이렇게 해주어야 해. 알았지?"라고 칭찬하자, 옆에서 듣던 딸이 기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딸! 속으로 ‘너 나 잘해!’라고 말하고 있지?"라며 내가 딸의 속을 들여다보듯 웃으며 말하자,
"어. 연애를 왜 해? 연애는 애정 결핍증이 있는 두 남녀가 만나는 거야. 우리처럼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들은 연애할 필요 없어. 머리만 아파!"라며 웃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딸! 결혼은 안 해도 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거야. 그것만으로도 삶은 더욱 풍요로워져. 애정결핍이 있어서 만난다는 것도 인정해. 하지만 사람은 완벽할 수 없잖아. 서로 약점을 이해하고 보완해 주면서, 서로의 마음도 공유하고 아껴 주는 거야. 사랑하면 표정부터 달라져. 사랑하면 세상의 모든 게 다 이뻐 보이고 순간순간 행복해."라며 항상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 나는 나의 기분에 도취 되어 말하고 있었다.
"글쎄! 엄마 아들과 나는 우리끼리도 충분히 잘 지낼 거 같아. 애정결핍이 없잖아. 애정결핍 쩐 사람들 신경 쓰면서 살 필요가 뭐 있어?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딸의 모습에서 그녀만의 독립적이고 강인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내 딸이지만,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놀라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애정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만난다.’라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꿈꿨던 사랑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랑은 '많은 애정과 관심을 포함한 강렬한 감정의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포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랑은 '관용성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의 약점이나 부족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자신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사랑과 희생,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의 행복을 위해 나 자신을 많이 내려놓았다. 아이를 키우는 15년 동안 나의 삶을 거의 살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아들딸을 차별했다. 교육도 아들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딸인 나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아들딸에게 균등한 기회와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다. 돈도 좋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돈도 필요 없다.'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모든 사랑과 좋아하는 돈과 정성을 아이들과 남편에게 바쳤다. 아깝다거나 억울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이쁘게 커 주는 모습에 만족했다.
그러나 우리 딸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랑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자식도 절대 낳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도 키우기 힘든 자식을 낳는 건 찬성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랑이 '애정결핍이 있는 두 사람이 서로의 애정결핍을 치유하기 위해 사랑해 달라며 만나는 관계'라는 말은 쇼킹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개념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인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자녀 중심적인 현대사회에서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인터넷과 혼족 생활의 편리성으로 이루어진 우리 자녀들의 세대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어떻게 변화가 될까?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나는 여전히 진정한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나만의 사랑과 가족에 관한 생각을 되새기며, 오늘도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간직한다. 우리 가족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가족만의 소중한 가치라고 느낀다.
20230724, 202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