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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Feb 16. 2024

가족의 온기 : 자녀의 사랑으로 유방암을 치유하는 엄마


새벽의 고요 속에서 큰집으로 향한 남편과 아들은 아침만 먹고 돌아왔다. 명절 아침, 아들이 도착하기 전에 나는 딸 방으로 갔다. 큰집에 가지 못한 딸의 감기는 가벼운 질병이지만, 나의 걱정을 불러오는 사건이 되었다.      



딸을 보면서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낮까지도 괜찮았던 감기가 저녁이 되자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심한 몸살을 앓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녀의 내면적 거부감이 물리적 증상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이 몸으로는 큰집 가면 안 되겠지? 거기 아기도 있는데?”라며 아프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 딸의 모습에 나는 웃음만 나왔다. 딸은 나에게 가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여러 번 했었다. 나는 그래도 일 년에 2번이고, 가면 세뱃돈도 주고 아빠 체면도 세워달라며 좋게 달랬었다.      




가족은 때로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들이 어린 시절, 내가 처음 유방암에 걸렸을 때, 자신이 학교 간 사이 엄마가 병원 가서 사라질까, 봐 우울증과 불안감을 독감으로 반응했던 것처럼.    

  

가족 간의 연결고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 불안감이 아들에게는 열병으로, 나에게는 생존의 의지와 새로운 휴식을 제공했다.   

  

나의 유방암 진단은 가정의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도피처였다. 결혼 후 겪은 수많은 어려움, 특히 남편과의 지옥 같은 10년간의 불화는 나의 심신을 모두 무너트렸다. 가족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참아내며 살아왔지만, 몸은 결국 한계를 말해주었다.  

    

이젠 그만 쉬어도 된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짐을 좀 내려놓으라고.’ 유방암이 오기 전, 아들을 돌봐 준 산후도우미 하시는 분과 학원에서 일을 도와준 언니는 여러 번 그만 헤어지라고 진심 어린 충고도 했었다.      


아이들 때문에 죽지 못해 10년을 살다 보니 유방암이 왔다. 처음에는 놀랬고 기가 막혔었다. 하지만, 내 아들딸들을 지키기 위한 나의 바락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휴식 시간을 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 휴식도 그만하고 싶다.     




아들은 어젯밤 나에게 누나 세뱃돈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딸은 일어나서 아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들의 답은 돈 안 줄 거야.”라는 한마디 답만 왔다. 딸도 자신의 몫을 빼앗기려 하지 않았다. 나의 조정이 필요했다.     


딸에게 아들도 가기 싫었지만, 아빠가 아침에 세 번이나 깨워 억지로 데리고 갔다고 말하자,     


엄마! 난 아빠가 이해가 안 돼.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가는 거야? 아빠 혼자만 가던지?”라며 불평했다.      


! 아빠가 그런 걸 잘했으면 엄마가 그렇게 아빠와 싸웠겠니? 우리가 이 지경으로 살았겠니? 사람은 바뀌지 않아. 아빠니깐 이해하자. 아들에게는 5만 원 떼어주자.”     


“5만 원은 줄 생각 있어. 근데 줄까?”라며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가 중재해 줄게. 아무 말 하지 말고 기다려.”     




아들이 왔다. 나는 항상 하듯이

“우리 멋쟁이! 잘 다녀왔어? 일찍 일어나서 힘들었지? 역시 아들밖에 없네. 아들 노릇이 힘들어. 세뱃돈은 얼마 받았어?”라며 자연스럽게 웃으며 물어보자, 고개만 끄덕이던 아들은 조그만 소리로 “80만 원이라고 말했다.      




“많이 주었네? 공진단 보낸 효과가 있었나?”라며 웃었다. 나는 가지 않았지만, 남편은 항상 형에게 뭐든 주고 싶어 했다. 이해되지 않지만, 남편 마음이 그렇다는 건 알고 있다. 선물로 가기 전에 비싼 거야!”라며 공진단을 챙겨주었다.     


남편은 속으로 좋아도 겉으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기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싫다는 말 대신 “공진단 비싼 건 다 알지!”라며 만족한다는 표시로 대답했다.     


이런 점도 나하고 맞지 않는다. 나는 고마우면 고마운 표현을 확실하게 한다. 나라면,

“정말! 당신밖에 없네. 우리 형이 좋아하겠다. 고마워!”라고 말했을 텐데. ‘뭘 기대하겠는가? 기대하면 싸움만 나지.’  

   



멋쟁이 아들! 아침부터 가기 싫은 거 갔는데 누나 다 주면 억울하니깐, 5만 원은 아들이 더 갖는 걸로 하고 누나 35만 원 주면 어때?”라고 말하자,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이다. 나는 마음 변하기 전에     


“아들아! 돈 꺼내봐! 엄마가 나누어 줄게! 누가 이렇게 많이 준 거야?”


“큰아버지가 도착하니깐 차에 있을 때, 20만 원씩 주고, 세뱃돈으로 10만 원씩, 그리고 큰아들이 10만 원씩 줬어.”     


“미리 준 돈은 눈치 보이니깐 준거고, 큰아들도 공진단 받고 미안하니깐 아주버니가 준 것 같다.”

“나도 그런 것 같아 엄마!”라며 딸이 맞장구쳤다.     


아들에게 돈을 받아서 아들 45만 원, 35만 원을 챙겨주었다. 그리고 아빠한테 가서 세뱃돈 받으라고 시켰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가서 절하고 달라고 하자, 돈이 없다며 지갑에 있는 돈을 털어 5만 원씩 받았다며 나에게 왔다.      


엄마는 아까 금 줬지? 그걸로 땡이야.”라고 말하자, 말이 없던 아들이 돈도 달라며 매달렸다. 처음이었다. 아들이 달라고 하는 건.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자, 딸은 색을 바꿔 달라고 했다. 아들은 노란색이라며 5만 원을 요구했다. 자신의 주장을 하는 아들의 변화된 모습이 이뻐서 기분 좋게 주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주는 돈과 모은 용돈으로 금을 사준다. 현금을 통장에 넣지 말고 금으로 모으라고 했다. 항상 나의 불안한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혹시나 내게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아이들에게 대처 수단을 마련해 주고 있다.     


둘은 다시 사이가 좋아져 함께 영화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뿌듯했다. 밤새 잠을 못 잔 나는 낮잠을 편한 마음으로 잤다. 자고 일어나니 딸은 저녁 준비를 혼자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자고 동생은 설거지 담당이라 놀고 있었다. 감사했다.     




딸이 딸기 디저트 뷔페를 가고 싶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비싸서 혼자 간다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엄마도 데리고 가라고 했더니 자신의 용돈을 계산하면서 알았다고 했다. 엄마를 데리고 가겠다는 딸의 마음이 고맙고 이뻤다. 엄마가 원하는 건 다 해주려는 딸에게 감사했다.     


아들은 어떻게 하지?”라고 묻자, 딸은 아들은 못 사준다며 둘만 가자고 했다. 이해는 된다. 1인당 85,000〜120,000원인데 동생까지는 딸로서는 무리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가자고 하면 자기 돈 내고 갈 아들이 아니다.      


나는 웃으면서 “3명 예약해! 엄마가 쏠게.”라는 말에 딸은 좋아하며 예약했다. 4월 둘째 주 토요일이란다. 나의 놀란 표정을 본 딸은, 모든 호텔 예약이 끝났어. 여기 만 남았어.”라며 서울 드래곤 시티로 예약했다.     


경기가 안 좋다더니 없는 서민만 힘든가 보다. 돈 있는 사람들은 더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1인당 10만 원이 넘는 곳이 예약이 끝났다고 하니 말이다. 아들딸의 만족하는 모습에 나는 ‘행복이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     




퇴원하고 2주 가까이 되었지만, 아들딸은 불만한 번 하지 않고, 나의 식사와 청소 빨래까지 모든 걸 둘이 해결해 주고 있다. 잘 키운 자식이 최고라는데. ‘내가 이런 행복을 위해 그 모진 세월을 견디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 웃음이 나왔다.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복잡하지만, 가족 간의 사랑과 지지는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힘을 주었다. 딸과 아들의 성장, 그들의 사랑과 배려는 나의 싸움을 의미 있게 만들었다. 유방암과의 싸움, 가정 내의 갈등, 이 모든 고난을 통해 우리 가족은 더욱 굳건해졌다.     


아이들과 함께할 딸기 디저트 뷔페의 계획은 단순한 외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가족이 서로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서울 드래곤 시티'로의 예약은 단지 호화로운 식사를 넘어서,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와 가족으로서 서로에게 주는 의미를 깊게 새겨준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가족의 온기는 바로 이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 사랑에서 비롯된다.      


나는 유방암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지만, 가족이라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 덕분에 그 어떤 도전이라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는다.     


20240214


#가족의 온기 #자녀 사랑 #딸기 디저트 뷔페 #세뱃돈 #유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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