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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Mar 13. 2024

자궁적출의 딜레마 : 생리 없는 세상이 오기를.

   

병원에서의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퇴원만을 기다렸다. 병원 밖의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를 품고 집으로 돌아온 지 3일도 지나지 않아 생리가 또 터졌다황당하고 미칠 것 같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었다.  

   

가정이라는 따뜻함에 안착하기도 전에내 몸은 끝없는 하혈로 반란을 시작했다지난번 고통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주일 만에 또다시 시작했다. 지난달 20일에 시작해 끝난 지 10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감당하기 힘든 출혈 속에서 나에게 자문해 본다. ‘내 몸에 얼마나 많은 피가 있기에 매번 이렇게 많은 양이 펑펑 쏟아지는 거니고문하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내가 그렇게 밉니내가 노는 꼴이 보기 싫은 거니?’   

  



현대의학이 어느 때보다 최고로 발달했다지만나와 같은 여성의 고통을 소홀히 다루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연구의 세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길 바라지만, 아직도 우리의 고통은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다.      


과학이라는 의학에서 간단한 생리 출혈을 막지 못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도대체 의사들은 뭘 연구하는 걸까? 인간의 호르몬에 관련된 연구는 왜 이렇게 소홀한 걸까?      


예전에는 연구자가 남자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많은 여성이 연구자로 일하고 있을 텐데그들은 왜 중요한 여성 호르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선근종이라는 진단이 의사의 입에서 나온 후에도그 원인이나 해결책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듣지 못했다. 오직 자궁의 정상 위치를 벗어나 비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벽 안쪽으로 파고들어 자라면서 자궁벽이 두꺼워지고 커진다며 어려운 말만 했다. 

     

치료로는 호르몬을 조절하기 위해 4주에 한 번 주사를 맞아 생리를 막는 방법도 있고, ‘미레나(자궁 내 장치)’ 시술로 5년간 생리를 막을 수도 있단다. 이외에도 경구 피임약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유방암 환자라 위의 경우들을 사용할 수 없단다그런데 왜 치료 약처럼 말하는지. 욕이 나온다.     


나에게 있어 유일한 대안은 자궁적출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며 강요하는 의사들이 밉기만 하다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선택이다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분명 여성에게 자궁이 중요한 기관이기에 주신 거다. 의사들은 자기 몸이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불편하면 제거하면 된다는 현대의학에 화가 난다.    

 



이번 달엔 코인이 올라 주면서 생활에 활기도 띠었다. 돈이 들어오면 아픔도 잃어버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3,000만 원 넘게 들어오면서 나에게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그것도 잠시, 아무리 좋아하는 돈이 들어와도 무시한 생리 양에 숨이 막혀왔다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하지만이건 너무하지 않은가견딜 수 있을 만큼만 고통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몸이 불편하니 모든 게 귀찮아졌다     


지금 나에게 어떤 선택이 현명한 치료인지 모르겠다. 의사의 권유대로 자궁을 들어내어 생리를 멈추게 하는 게 맞는 건지자궁을 들어내고 시간이 지나면 원인 모를 병들이 여기저기서 생긴다우선 허리가 안 좋은 나는 더 악화될 확률이 높다. 또한 자궁과 연결된 오장육부에도 영향을 미쳐 소화부터 원인 모를 병들이 계속 올 수 있다는 보고들이 많다.     


나이로 보았을 때 곧 끝날 시기인데, 이걸 못 참고 수술하기엔 지금까지 고생한 게 너무 억울하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 수술을 하다 마취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때는 더 많은 문제가 생긴다     


지금까지 병원 다니면서 치료에 집중한 이유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내가 움직이지 못해 어린 자식들이나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살아서 남에게 의존하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거다     




고통을 참고 있지만, 몸은 병원으로 가라고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 거부하고 싶다. 2주만 놀다 가고 싶다. 찬란하고 화려한 서울의 밤의 자유를 좀 더 누리고 싶다다음 생리 때까지만 견디고 싶다.   

   

병원 가서 링거를 맞으면 몸의 수분이 보충되면서 막힌 소변이 뚫리긴 한다. 부은 몸도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온다. 체력도 조금이나마 오르긴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병원의 주사가 잠깐의 안도감을 줄지는 몰라도 내면의 고통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병원 음식으로 나의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나날들나는 매끼 양질의 고기를 먹어야 하지만, 병원의 제한된 양과 맛으로는 내 몸이 원하는 영양을 채울 순 없다. 그렇다고 집에서도 못 해 먹는 음식을 병원에서 해 먹는 것도 부담스럽다. 병원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내 모습에 이제는 화가 난다.    

 



내가 하는 게 정말 생리가 맞을까?”라는 의문이 든다친구는 생리가 아니라 출혈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많은 피가 빠지면서 뼈마디마다 찾아오는 통증이 아픈 어깨와 다리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이 모든 걸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모르겠다.     




딸에게도 미안하다학교 다니면서 매일 엄마 식사까지 챙기고 있다. 이 나이에 딸에게 물어본다. “오늘 엄마 뭐 먹어야 해?”라고. 딸은 매일 다른 고기를 찾아 준비해 주고 간다. 내가 쇼핑하고 요리하는 걸 도울 수 없음을 알기에 딸은 불평 없이 챙겨주고 있다.   

  

내가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때는 빠르고 활기차던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제는 어린 자녀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있는 내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딸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동시에그녀가 나를 위해 해주는 모든 것에 대한 깊은 감사함을 가진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아픔, 고민, 그리고 선택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가족의 사랑과 지지를 느끼고 있다는 거다어쩌면그것이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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