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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Mar 20. 2024

환자복 대신 봄의 호출에 응답하고 싶어요!


봄날의 화사함과 밝은 날씨는 나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한다. 그 손짓에 유혹된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종로로 나갔다. 종로의 평일 오후는 주말과 달리 한가했다.     


지난주 토요일 대학 친구와 종로 익선동의 좁고 화려한 거리로 들어섰다. 개강한 어린 대학생들로 가득 찬 골목은 불편한 다리와 팔을 이끌고 걸어 다니기엔 위험스럽게 느껴졌다. 20대의 활기찬 젊은 공간이 불편한 나를 사람이 적은 종로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수요일 오후는 역시 예전처럼 종로 어디에도 붐비는 곳은 없었다. 오늘은 친구 생일 잔치와 금 투자를 위해 나갔다. 하지만, 정작 생일을 맞이한 친구는 몸살감기로 나오지 못했다. 코로나인 듯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었던 초기의 공포는 이제 일상 속의 작은 파동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그 파동 속에서 감기처럼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혼자만의 병으로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부터 트럼프 대통령 말씀대로 일반 유행성 독감으로 취급했다면 경기가 이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친구와 나는 금을 사기 위해 우리가 자주 가는 도매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나도 차를 가지고 갔을 텐데 주차하고 걸어 다니나, 집에서 전철역까지 걸으나 비슷하다는 생각에 차를 놓고 나왔다.     


친구는 주차비가 저렴한 주차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나는 먼저 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다. 금 투자를 시작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지금처럼 매일 무섭게 오른 적은 없었다. 요즘 비트코인과 금값이 누가 더 많이 오르나 시합하는 기분이 들었다.     


금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비트코인에서 얻은 이익을 금에 재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금은 비트코인과 달리 실물로 존재하고,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화폐로 확실한 자산 가치가 있다.     


처음 금을 사기 시작할 때, 금한 돈 가격이 195,000원이었다. 몇 년 사이에 금값이 두 배 가까이 올라 지금은 357,000원이 되자, 선득 사지지 않았다. 30만 원 아래로 내려가기를 기다리다 뒤통수 맞은 격이다.      


작년 연말부터 금은 거의 조정 없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비트코인과 오른 시기도 비슷하다. 하지만 금은 비트코인처럼 무식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현재 금값도 저평가된 금액이다. 금한 돈을 금광에서 캐기 위해 들어가는 인건비와 자재비 등이 백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금한 돈에 백만 원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올해 안에 40만 원은 무조건 가고 50을 바라본다는 게 종로 금 장사들의 예견이다. 어디까지 진실일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내가 투자해 본 결과 가장 안전한 투자는 금이었다.      


나는 팔지 2개와 골드바 19 돈 총 29돈을 샀다. 더 사고 싶었지만, 현금이 없었다. 도매거래는 무조건 현금거래다. 은행 시간도 끝났고, 카드 출금은 한도를 넘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친구와 저녁 먹으러 내가 좋아하는 고깃집으로 갔다.

     



종로는 역시 젊음의 거리다웠다. 어디를 가나 젊은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친구와 3인분의 고기와 냉면, 계란찜, 하이볼 등 배불리 먹고, 내가 좋아하는 익선동 “예일당”으로 갔다.     


예일당의 분위기가 나는 좋다. 한옥을 개조했지만, 어딘가 모를 유럽풍이 느껴지는 젊은이들의 장소이다. 피자와 수제 칵테일을 마시면서 만족스럽게 즐기는 젊은이를 보며 나의 잃어버린 청춘을 회상해 보았다.      


가장 이쁘고 즐겨야 할 나의 20대는 가난과 불안정한 집안 환경을 탓하며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낭비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음이지만, 지금이라도 그들처럼 지내고 싶었다. 이런 행복을 우리 아들딸은 마음껏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화려함 뒤에는 늘 삶의 무게가 따라붙었다. 젊음을 만끽하며 불편한 다리로 돌아다닌 나는 다음날 가득 찬 팔다리 통증으로 어제의 기쁨을 대신했다. 엄청난 생리 혈로 약해진 몸이 시내에서 걸어 다니며 즐기기엔 역부족이었나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의사 선생님께 전화해서 병원 예약을 해야 했다. 퇴원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한주만 더 있고 싶었는데. 이 좋은 봄날의 햇살을 흠뻑 만끽하기도 전에 나는 다시 병원으로 직행해야 했다. 학교생활로도 바쁜 어린 자녀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진 않았다.      


생리로 인해 몸은 퉁퉁 부어 있었고, 어깨와 다리 통증으로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링거를 맞으려고 하자 내가 요청한 주사약이 없다며, 월요일에 주문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우선 팔다리 통증을 완화 시켜줄 수 있는 근육이완제 링거를 요구했다.     


근육이완제 링거는 10년 전 마지막으로 맞은 기억이 난다. 허리 통증으로 입원했을 때, 링거로 며칠간 맞았다. 지금은 몸이 약해져 약물을 견딜 수 없어 통증을 참고 미루고만 있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      


약의 농도를 반으로 줄여 포도당 수액(DW 5%)에 혼합하여 최대한 천천히 맞았다. 대부분 병원이 포도당보다는 생리 식염수에 혼합해 준다. 저혈압과 혈당이 부족한 나는 포도당 수액(DW 5%)의 효과를 알기에 직접 요청했다.      


약의 농도를 일반인의 반으로 줄였음에도 10분 정도 지나자,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몸이 약해져 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작용이었다. 12시 이전에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오랜만에 8시부터 약에 취해 누었다. 마약에 취하면 이런 느낌일까?     




팔다리, 허리가 아파서 '자다 깨다'를 무수히 반복했지만, 아침 7시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친구들은 비트코인이 떨어졌다며 걱정의 문자와 전화를 했지만, 무음인 핸드폰은 나의 휴식을 방해하진 않았다.  

    

마냥 올라만 가면 좋겠지만, 코인같이 변동성이 심한 금융투자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수익 날 때 조금씩 챙기라고 했건만. 꼭 비쌀 때 사고 떨어지면 연락한다. 개미인 우리는 어쩔 수 없다. 그 안에서 먹고 살기 쉽지 않다. 이럴 때마다 신경 쓰면 주식 & 코인은 못 한다.      




근육이완제 링거가 효과는 있지만, 오랜 시간 주사를 맞아야 하고, 약이 독하다는 단점이 있다. 통증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자면서도 속이 불편했다. 계속 며칠을 맞기엔 나에겐 역부족이었다.      


새벽에 링거는 약을 혼합하지 않은 포도당만 부탁했다. 한 번씩 번갈아 맞겠다고 했다. 2~3일 맞으면 통증은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거 같았다. 한약으로 보신을 병행하긴 했지만 지금 체력으로는 무리라고 느껴 하루 맞고 포기했다.      




약해진 몸으로 치료는 쉽지 않았다. 병상에서 바라본 창밖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나는 건강을 되찾아 남들과 공존하는 세상 속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했다.     


이렇게 매번 겪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더 강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비트코인도, 금 투자도 그 어떤 것이든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얼마나 그 순간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 가는가에 있었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이 좋은 봄날 병원 안에서 링거와 싸우기보단 좋은 볕과 이쁜 꽃을 보며 쉬고 싶다고. 아름다운 봄날에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나에게 앞으로 맞이할 날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며 살게 해달라고.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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