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 가장 여유로운 토요일 저녁이었다. 창밖으로는 이미 어둠이 낄린 가운데, 우리 집안은 따뜻한 불빛과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아들딸이 한 달 동안 공부하면서 집안일을 불만 없이 해준 노고를 격려하는 용돈 정산의 시간이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난 뒤 아들은 공부한 만큼 돈을 받고, 나를 위해 집안일과 동생 공부를 시켜준 딸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용돈을 받은 아들딸은 행복함에 젖어 지금은 놀고 싶다며 고스톱을 하자고 했다.
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들은 화투패를 찾아왔고, 딸은 이불 한 장을 들고 식탁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내 동전통을 달라고 했다. 거기에는 많은 동전과 천 원짜리가 들어있다. 화투치기 위한 준비물이다.
아들딸과 화투를 치는 시간은 웃음소리가 집안을 메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다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경제 이야기로 옮겨졌다. 우리 가정을 좌지우지하는 딸에게 18K 금목걸이를 사주자, 비싼 금값에 서로가 자기 금을 챙기기 시작했다.
“금이 계속 오르는데 오늘이 토요일이니깐 사려면 내일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어. 월요일 되면 또 오를 텐데.”라고 말하자,
“그럼, 내일 사! 후회하지 말고.”라며 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럴까? 그럼, 50돈만 살까? 너무 비싸 서리.”라고 말하며 친구에게 전화했다. 그러자 친구는,
“현금 있으면 내 것도 20돈만 사 올래?”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사자.”라고 말한 뒤 나는 현금을 챙겼다.
다음 날 아침, 변덕쟁이인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높은 가격에 많이 사는 것 같아. 10돈만 살래.”라고 말하자, 친구도 10돈만 산다고 했다. 종로로 나간 나는 마음의 결정을 못 하고 망설이다 25돈을 샀다. 그중에 5돈은 큰언니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내 친정 쪽 가족은 사이가 좋지 않다. 부모님이 잘못 키웠다고 생각한다. 아들밖에 모르는 아버지와 당신 자신밖에 모르는 어머니.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부모님 사이에서 자란 우리 형제는 자기 이득만 챙기다 보니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도 내가 복이 있는 건지 큰언니는 나를 항상 생각해 주었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바쁜 언니는 좋지 않은 몸으로 나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주고 나의 건강만 걱정했다.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에게 큰언니의 사랑은 너무도 소중했다. 항상 뭐든 해주고 싶었다.
언니도 어깨와 허리가 자주 아프다. 의료기기를 많이 사본 나는 좋은 게 있으면 언니에게도 사주고 싶었다. 가끔 사주기는 하지만 언니는 부담된다며 거절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세라젬은 잘 쓰고 있었다.
좋은 영양제나 한약도 가끔 지어주기도 하지만, 주어도 주어도 또 주고 싶었다. 금을 사 온 나는 딸에게
“큰이모 팔찌 하나 해주려고 20 돈 사려다 25 돈 쌌어.”
“엄마! 그럼. 가서 보여주고 이쁘다는 거 올 때 팔에 채워주고 와!”라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고, 감동적이었다.
“왜 주냐고?” 묻지도 않았다. 나보다 마음이 넓고 잘 커 준 딸에게 고마웠다.
나는 언니에게 5돈짜리 팔찌를 주고 싶었다. 내 모든 팔찌를 들고 언니네로 간 나는 언니에게 이쁜 거 고르라고 했다. 언니는 다 이쁘지만 싫다고 했다. 나는 억지로 5돈짜리를 주었지만, 끝내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이 3돈짜리로 주었다.
언니는 그날도 나를 위해 많은 옷을 사주었다. 게다가 허리도 아프고 몸도 안 좋은 언니는 내가 온다는 소리에 힘든 김치를 담그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병원 간다는 걸 알고 있는 언니는 나를 위한 반찬을 챙기고 있었다.
또한 병원 가면 고기 먹기 힘들다며 고깃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사랑받는 행복감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집에 있는 동안 매일 하루에 한 끼는 고기를 먹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가족의 사랑과 마음이 담긴 고기였다.
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해 준 반찬과 옷을 한 보따리 들고 오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준 거의 몇 배를 받아오는 거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행복했다. 맛있는 김치를 하룻밤 익히면서 먹을 생각에 입맛이 돌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일 것이다. 가족은 단지 피로 이어진 연결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때로는 서로의 짐을 나누며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언니에게 준 팔찌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언니가 나를 위해 베풀었던 사랑과 정성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비록 언니가 처음에는 그 선물을 받기 꺼려했지만, 결국은 나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병원에서 언니가 준 반찬을 맛보며 느꼈던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가족의 사랑과 마음이 담긴 음식은 매일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족은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며, 때로는 서로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족의 모습이며, 이러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다. 내 삶 속에서 이런 순간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가족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2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