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저수지의 고요함

by 김종열

낚싯대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새벽이라기엔 조금 늦고, 아침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 도착한 저수지는 아늑하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닐 낚싯대를 준비한다. 바늘을 달고 뭉친 떡밥 속에 감춘 다음 저수지를 향해 하나하나 던진다. 다음은 대 낚싯대이다. 긴 것부터 짧은 것 순으로 차례차례 채비를 마친다. 마치 부채를 펼친 것 같다. 이제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저수지는 고요하고, 낚싯대는 조용하고,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차피 낚시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저수지도, 낚싯대도, 나도 불만은 전혀 없다.


고요와 조용 사이로 시간은 보이지 않게 흐르는데 생각은 치열하다. ‘도대체 그 사람이 그렇게 적대적인 이유가 뭘까? 왜 그렇게 나를 험담을 하고 다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는데 도대체 왜? 정말 나쁜 ×× 아닌가?’


어느덧 한 낯이다. 그 사람이 나쁘고, 그 사람이 잘못했고, 그 사람이 ××인 건 변함없고, 스트레스는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고요와 조용은 변함없이 저수지를 감싸고 있다. 스트레스는 식욕마저 이겨버렸는지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무처럼 습관적으로 점심 도시락을 연다. 김밥 한 알을 집는다.


틀에 갇혀버린 생각은 틀에서 굳어버린 벽돌처럼 견고하기 그지없다.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견고하다고 부서지지 않는 건 아니다. 어느 순간 단단히 굳어 있던 생각 사이로 ‘내 잘 못은 없었나? 원인이 나였을까?’라는 다른 형태의 생각이 뾰족이 머리를 내민다. ‘아니,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빠르고 강하게 부정해 버린다. 그러나


한 번 머리를 내 민 의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어 간다. ‘맞아, 그랬었어. 물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했지만 내가 너무 불만스러운 얼굴로, 날카로운 언어로, 불량스러운 몸짓을 한 건 사실이잖아. 그러다 보니 그 사람도 그랬을 테고, 주변도 그렇게 싸 해졌겠지.’ 주섬주섬 낚싯대를 거두어들인다. 해는 일찌감치 서산을 넘어 버렸고, 여전히 조용하고 고요한 저수지 위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다음 날이다. 출근과 동시에 그 사람, 직장상사를 찾아간다. 이러저러한 점이 잘못되었다고 사과한다. 놀란 듯한 차가운 시선이 돌아온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있었던가?


며칠 후 입사동기로부터 그 사람, 직장상사가 나를 칭찬하더라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렇게 친한 직장상사가 생겼고, 그렇게 위기의 직장생활이 지나갔다.


인격이 성숙해지고 남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자신의 잘못을 볼 줄 알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면 스쳐 지나간 세월의 두께만큼 고집스러워져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님 이도 저도 아닌 꼰대가 되어있는 걸까?


그때, 그 저수지의 고요와 조용함을 다시 한번 찾아가 봐야 알게 되려나? 이젠, 낚싯대도 없는데.


Alexi Zaitsev-무제.jpg Alexi Zaitsev-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