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

by 김종열

예능 프로그램인 토크쇼를 보고 있다. 개그맨, 가수, 배우 등의 연예인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데, 다들 말을 너무 잘한다. 출연자 한 분이 어떤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데 진행자가 말을 자른다. 출연자가 웃으며 말한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좀 들어주시겠어요.”

웃음이 터진다.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그리고 웃을 수 있는 것. 이건 예능이기 때문에만 가능한 일일까?


시사·정치 토크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그다지 엄중한 사안이 아닌 것 같은데 패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다르다. 부딪힌다. 남의 말을 자르고, 부인하고, 부인한 걸 또 부인하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운다. 세상에 자기만 옳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줄 뻔히 알 텐데 그러고들 있다. 가장 훌륭한 설득 방법은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걸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체하는 것인지.


오래 전의 일이다. 같이 근무하던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여자 동료직원이 있었다. 언제나 밝은 얼굴이었고 긍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은 동료였다. 그러나 때때로 얼굴이 어두워질 때가 있었는데, 몇 번을 모르는 체하다 어느 날 따로 자리를 하여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직장생활도 즐겁고, 친구들 간의 문제도 없는데 가족으로 인해 힘들다는 거였다, 사업을 하는 가족이 있는데 돈을 빌려가서는 갚지도 않을뿐더러 계속 요구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월급이지만 아껴서 저축하고 그 저축으로 앞으로의 꿈을 키워가야 하는데 번번이 좌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두운 얼굴이 되는 사유는 알게 되었으나 어떤 해결책도 내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맞장구만 쳐주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웃음 띤 얼굴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아주 홀가분해졌다고.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속상하겠다.” 따위의 리액션 밖엔 없었는데…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사람을 통해 치유받는 것 같다. 내 아픔을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마음의 치료를 받고, 상처받은 누군가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그 아픔을 덜어주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말을 듣는 것보다는 하는 쪽을 선택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해결해 주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이 옳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누구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은 타인의 의견에 공감하는 것이며,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고, 배려하는 것이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침묵을 금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누구나 다 침묵이라는 금덩이를 갖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웬만하면 들어주자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렇다고 꼭 필요한 말도 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는 말고.


호안 미로 - 화려한 날개의 미소.jpg 호안 미로 - 화려한 날개의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