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시간

by 김종열

새벽 산책길은 많은 즐거움을 준다. 희붐한 밝기가 주는 모호함 속에 보이는 사물들, 새것인 듯한 공기, 미처 깨어나지 않은 작은 소리들, 그리고 동쪽이구나 싶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 등이 그것이다.

특히나 여명은 마주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그건 아마 평생 고칠 수 없는 게으름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가끔씩 나서는 새벽길에서, 작은 넓이의 빨간색에서 점점 더 넓은 크기의 노란색으로 변해가다, 드디어 ‘둥근 해가 떴습니다.’를 연출하는 일출을 본 날은, 그냥 그날이 새해 아침이거니 하는 새 마음을 갖게 한다.

어느 날 정오를 향해 가는 시간쯤 지인에게서 메신저가 도착한다. 밖을 한번 보라는 메시지와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둘러싼 무지개가 찍혀 있는 사진이다. 드문 현상이다.

하늘을 채우고 있는 안개 등의 습기가 만들어 낸 현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햇무리라고 부르며 햇무리를 보면 행운을 가져다준단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창을 통해 해를 바라본다.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 창밖을 본다. 보일 리 없다. 그동안 본 하늘은 올려다보는 하늘이 아니라 맞은편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본다. 조금은 옅어졌지만 희미하게 무지개가 태양 주위에 링을 그리고 있다. 살짝 신기하다. 정말 행운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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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행운은 그날 저녁 득달같이 찾아왔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강가 산책길을 설렁설렁 걷고 있을 때였다. 시간을 함께 하던 분이 “아! 노을이 정말 예쁘다.”라고 하며 서쪽 하늘을 가리킨다. 태양은 이미 제 할 일을 다 하고 서산 너머로 숨어 버렸는데, 그 주위를 붉게 물들인 노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보지 않았음일까?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오랫동안 살았던 곳의 잦은 산책길에서 노을과의 만남이 이처럼 생경스러운 까닭이. 그리고 곧장 햇무리가 주는 행운이 이것인가 보다 생각한다.


축복받았을 여명의 시간은 아득히 먼 옛날이 되었고, 앞만 보고 달렸던 뜨거운 한낮의 시간도 어느덧 저 멀리 가버렸다. 그리고 이제 노을의 나이가 되었다.

서산 너머에 숨어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저 노을의 태양처럼 노을의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고 있는 걸까? 나는.


JP Rooney-The White Wash Moon.jpg JP Rooney-The White Wash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