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당에 가는 날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시동을 걸고 습관처럼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매년 벌초, 시제 등의 일로 두세 차례 찾는 곳이어서 내비가 필요 없음에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워낙 길치이기도 하지만, 어느덧 내비의 안내가 익숙해져 버렸음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길을 줄여나간다. 그런데 내비가 알고 있는 길이 아닌 고속도로로 진입하란다. 순간 갈등이 생긴다. ‘아는 길로 갈까? 아니면 내비 말을 들을까?’ 집에서는 아내의 말, 골프장에서 캐디의 말, 운전할 땐 내비 말을 잘 들으라고 하지 않는가.
항상 아내의 말대로 했던가? 캐디가 가리키는 쪽으로 공이 갔던가? 내비도 가끔 실수하는 것 같던데, 그런 생각으로 아는 길로 계속 간다.
유턴을 하란다. 무시한다. 몇 차례 더 안내하더니 포기했는지 그냥 가란다. 그런데 시간과 거리는 많이 늘어나 버린다. ‘뭐지?’하면서도 아는 길이기 때문에 별 다른 생각 없이 길을 간다. 그리고 무사히 추모당 입구에 도착한다.
이제 산 길을 걸어가야 한다. 입구를 보니 겨우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넓이이다. 옛날 부근에 과수원을 경영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차량이 드나들던 포장길이었는데, 이제는 입구를 찾기 어렵고 포장길은 물길에 휩쓸려 가버리고 걷기조차 힘든 길이 되어있다.
길이 길이길 포기한 길은 이미 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길 밖에 없어서 그 길을 이용해야 한다면, 그 길은 길이 아닌 길이 된다. 그렇게 길이 아닌 길을 따라 추모당에 도착한다. 벌써 피곤하다.
행사를 마치고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다. 자연스럽게 길 얘기가 나온다. 집안 형님 한 분이 산 능선을 따라가면 출발지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다들 길이 아닌 길이 싫었는지 그쪽으로 가보자고 한다. 능선을 향해 올라가서 능선을 타고 내려온다. 당연히 길은 없다. 이 길도 쉽지 않다. 길이 없는 길이니 그럴 수밖에, 결국 길이 아닌 길을 버리고 길 없는 길을 택한 셈이다.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른다. 시동을 걸고 또 습관처럼 내비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이번에는 내비의 말을 잘 듣자고 생각하며 출발한다. 역시 고속도로로 진입하란다. 그제야 생각난다. ‘아! 고속도로 개통했었지, 그럼 전에 다니던 길은 이제 잊힐 길이 되는 건가.’
산이 있으면 터널을 뚫어버리고, 계곡이 있으면 다리를 놓아서 오르막 내리막도 없고, 좌우로 핸들을 움직일 일도 그다지 없는 편안한 새 길을 따라 집에 도착한다. 무려 20분이나 빠르다. 착실하게 제한속도를 준수했음에도 말이다.
새 길이 나면 누구나 그 길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지금 까지 다니던 길에 약간의 미련이 남는 건 왜일까? 그 길에 정이 들어서? 익숙함 때문에?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고 코너링을 하는 운전의 재미 때문에? 아니면 잊힐 길과, 잊힐 세대라는 동류의식 때문에?
뭐가 되었던 내게서 잊힐 길도 누군가에겐 길의 역할을 하는 필요한 길일 테고, 추모당 갈 땐 찾지 않겠지만 다른 용무가 있을 땐 다시 찾는 길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사람도 그런 것 아닐까? 누구나 시간의 벨트 위에서 새 세대에게 밀려나는 잊힐 세대가 될 테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하고 누군가는 찾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 그렇게 위안을 하자.
…… 그럼 길이 아닌 길과, 길 없는 길은?
사람이 아닌 사람, 사람도 아닌 사람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테고, 사람 없는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도 되어선 안 되지 않겠나?
사람다우려면, 사람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