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좋은 분들과의 제주 여행기
다음 날이다. 다들 살아서 나온다. 조금씩 푸석한 거 같긴 하다. 어제저녁의 회고와 함께 wind1947에 도착한다. 이건 뭐?
서바이벌 게임과 카트 레이싱을 하는 곳이다. 이 나이에? 더 늙기 전에 해봐야 한단다. 헬멧을 장착하고 카트에 오른다. 기분은 레이서다. 시동을 건다. 시끄럽다, 많이. 출발한다. 최대한 운전하기 불편하게 만들어 놓은 차 같다. 레이싱 코스를 한 바퀴 돌고 차고로 들어선다. 시간이 될 때까지 더 타란다. 다시 레이싱 코스로 나선다.
사람만큼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 있을까? 운전이 손에 익기 시작하며 슬슬 재미있어진다. 그런데 그 순간 삑삑 한다. 그만 타라는 거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카트에 앉고 서고 해서 단체 사진을 촬영한다. 우리는 이런 거 해봤다는 증거를 남기는 의미? 사진을 본다. 생각보다 괜찮다.
그나저나 wind1947은 뭔 의미 일꼬? 궁금하면 500원. 이런 개그 떠오르면 옛날 사람인데, 옛날 사람인데, 옛날 사람이지. 바람이 많은 제주라서 wind고, 레이싱 코스 길이가 1947m란다. 그래서 wind1947. 친절하면 어디가 덧나나? 설명 좀 해놓지. 1947이 연도 인 줄 알았잖아.
약간은 지랄 같은 성격인데, 뭘 하면 순서대로 차곡차곡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 것도 LP나 CD가 꽂혀 있는 순서대로 차곡차곡 듣는데, 이게 정말 웃기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러고 있다.
제주여행 하루 전날 차례를 맞은 CD를 꺼내 들었는데, 그게 이미자 노래만 모아서 구워놓은 CD였다. 당연히 동백아가씨는 맨 처음에 수록되어 있고.
동백수목원으로 향한다고 풀어놓는 설레발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동백이 있는 수목원이다. 동백은 짙고 무성한 초록잎 사이에 ♬빨갛게 멍이 든♬ 꽃이 점점이 피어 있는 게 매력인 것 같다. 또 사진을 찍는다. 이 동백에서 찍고, 저 동백에서 찍고, 이 사람과 찍고, 저 사람과 찍고, 이 나무 사이에서 찍고, 저 나무 사이에서 찍고.
동백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너무 많으니 이제 예쁜 줄도 모르겠다. 저기 키 작은 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 있다. 뭐냐니까 흰 동백이란다. 처음 본다. 예뻐 보인다.
붉은 꽃 천지에 흰 꽃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꽃도 나무도 경제 논리라는 거? 희소성의 원칙. 동백 아가씨였으면 더 좋았을 동백수목원을 떠난다.
시원한 국물로 해장을 겸한 점심을 마치고 쇠소깍에 도착한다. 뭍에서 흐르는 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인데 주변 나무가 멋있고, 잔잔하고 푸른 수면이 안정감을 준다. 바로 옆의 바다는 출렁이나 전혀 출렁이지 않는.
카약을 타려고 시도하나 시간이 맞질 않는다. 카약 시간에 맞추면 다른 일정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칭 명품 빵집이라는 곳에서 달달한 빵과 차를 마신다. 좋다. 이런 거. 살짝 여유로운 거 말이다.
정방폭포를 찾는다. 정방폭포는…… 폭포다. 바다로 떨어지는. 뭐 그냥 그렇게 쓰윽 둘러보곤 용머리 해안으로 향한다. 도착하니 돌아가란다. 지금은 만조라서 들어갈 수 없단다. 아니 이런 거 미리 챙기는 용의주도함, 뭐 그런 거 갖춰야 되는 거 아닌감?
야구를 보면 9회 말의 결정적인 순간에 대타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 감독은 당연히 데이터를 분석하여 투수에게 강한 타자를 고르거나 그러겠지만, 야구 상식이 별로 없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대타가 한 건 해주면 대타라는 게 원래 잘하는 선수구나 싶다.
용머리의 대타인 송악산이 좀 그런 느낌이다. 대타인데 잘하는, 대타인데, 심지어 입장료도 없는데, 경관 좋고, 산책길 좋은 그런 곳.
하루 전날 섭지코지에서 했던 일을 또 한다. 석양을 이고 사진 찍는 거.
저녁 만찬은 제주스럽게 횟집이다. 겁이 없는 데다 간이 큰 총무가 제일 비싼 걸 시킨다. 무슨무슨 돔, 방어, 갈치회, 고등어회 그런 것들로 꾸며진 회는… 맛있다. 겁 없는 총무 덕분이다. 평생 해야 할 것 같다. 총무.
일찍 퇴근시키지 않는다고 징징댔지만 실제로 일찍 퇴근하면 할 게 없다. 8명의 마음이 다 다른 것 같다. 쉬고 싶은 자, 자고 싶은 자, 목욕하고 싶은 자, 다 귀찮은 자, 더 놀고 싶은 자. 이럴 땐 거의 대부분 더 놀고 싶은 자가 이긴다.
기어코 방에 모이기로 한다. 그래 마지막 밤엔 이런 거 해줘야지. 숙달된 사모들은 각자의 방에서 의자를 가져오고 앉을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 사이 왕성한 이사님께서 프런트로 가서 하마터면 못 받을 뻔했던 생맥주 쿠폰을 챙겨 오시고, 그걸로 생맥주를 마련하여 동그랗게 둘러앉는다. 그리고 건배! 그런데 생맥주 심하게 맛있다. 이 집 생맥주 잘하네. 그렇게 두 번째의 밤이면서 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잠자리에 든다. 금방 잠이 든다. 화장실 가느라 일어난다, 시계를 본다. 3시 30분이다. 그리곤 잠이 오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설레는 일인가? 그건 아닐 테고. 이건 뭐지, 이건 뭐지 하면서 잠 못 이룬다.
이런 식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