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제주가 부리고 돈은 총무가 번다. 아니, 낸다.

늘그막에 제주 여행기

by 김종열

오래간만의 만남은 오래의 길이만큼 반갑다. 그렇게 4쌍 부부의 시끌벅적한 저녁식사 자리가 시작되었다. 약간의 취기가 이성보다는 감성에 반응할 즈음, 누군가 여행을 한 번 가잔다.


반대할 이유? 전혀 없다. 통과. 그럼, 장소는? 렌트를 하여 어쩌고 하는 걸 겁도 없이 내가 자르고 나선다. 비행기 탓을 때 ‘붕’하고 떠오르는 기분 좀 느끼게 해 달라고. 그래서 갑자기, 뜬금없이, 순식간에 제주여행.

나이가 적은 건 때로는 죄가 된다. 그 죄로 총무를 맡게 된 친구는 ‘겨우 두 살 차인데’라고 투덜거리면서, 심하게 확실하게 여행 준비를 한다. 그리고 출발.


비행기는 어김없이 ‘붕’하고 떠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하며 떠올랐다. 그리곤 기억이 없다. 설레었던가보다. 전날 밤 잠을 설쳤으니. 눈 뜨니 제주다.

아내와 수화물 찾는 곳으로 간다. 화장실 갈 테니 짐을 찾으란다. 나도 가야 하는데 화장실. 캐리어를 찾고 돌아서니 다들 모여 있다. 심지어 운전해주실 기사님까지. 가잔다. 그럼 화장실은?


제법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돌 문화 공원이다. 웬 공원? 제주까지 와서 그런데 괜찮다. 아주 많이.

제주의 돌로 꾸며진 산책길도 좋고, 넓은 잔디밭도 괜찮고, 하늘거리는 갈대밭도 가을 가을하다. 모두들 좋아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저걸 보긴 할 건가 싶다. 하긴 사진은 찍히는 맛이니.

커피 한잔 하고 싶은데 안 된단다. 다음 코스로 빨리 이동해야 한단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하는 아직 못 버린 저 직업병. 꾸역꾸역 차에 오른다.

일반적으로 레일바이크는 폐쇄된 철로를 이용하는데, 제주에도 버려진 레일이 있었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한다. 레일이 없으면 깔면 되는 건데.

천천히 바이크가 출발한다. 정말 자전거의 속도구나 싶은데, 어라, 내리막길에선 제법 빠르다. 소리는 속도보다 훨씬 요란스럽고. 그런데, 그 또한 즐겁다. 펼쳐진 갈대와, 드문드문 보이는 동백과, 스치는 바람이 늦은 가을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그리고…… 배도 고프다. 밥 먹고 합시다.

성산 일출봉에 도착해서야 밥을 먹는다. 맛있다. 그럴 수밖에 배가 이렇게 고픈데. 염원하였던 커피까지 한잔 하고는 일출봉을 향해 오른다.

오르는 길이 조금 힘들긴 하나 볼거리가 많다. 이렇게 저렇게 생긴 바위와, 예쁘장한 식물들과, 봉우리에서 보는 분화구와, 멀리 보이는 바다 등. 쓰윽 옛날 생각이 난다. 아주 많이 오래 전의 신혼여행.

나는 검은 양복에 넥타이까지 장착한 차림이고, 아내는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였던가? 고운 한복을 입고 있다. 예쁜 새댁의 모습이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촌스런 복장인데 그땐 뭐 다 그렇게 입고 신혼 사진 촬영하고 그랬으니까.

아마 오래된 앨범 어딘가에 풋풋한 신혼부부와 성산 일출봉이 함께한 사진이, 지나간 세월만큼 늙은 내 모습처럼 지나간 세월만큼 빛바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을 거다. 이동하잔다. 퍼뜩 빛바랜 사진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섭지코지로 향한다.


예전에 북해도엘 여행 갔을 땐 5시에 퇴근하는 일정이었다. 해가 있을 때 퇴근하여, 온천하고, 먹고, 쉬고, 그거 괜찮았었는데…… 이번 여행도 조금 빨리 퇴근시켜 달라고 부탁했건만, 그래 줄 리가 있겠는가? 어김없이 지는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어둠을 어깨에 이고는 섭지코지를 출발한다.

저녁식사 자리는 심하게 화기애애하다. 흑돼지 고깃집인데 관광객이 떼거리로 몰려오는 기업형 고깃집이 아니어서 좋다. 속닥하다. 맛있게 고기가 구워지고 마음도 맛있게 말랑말랑해져 간다. 또 직업병이 도진다. 돌아가며 건배사 하는 거.

사모들도 ‘어머 저 술 못해요’ 이런 거 안 하고 몇 잔씩 한다. 왁자한 만찬을 마치고 작은 버스 안에서 그 어렵다는 무반주 노래까지 한 후에야 체크인한다. 10시가 넘었다. 미쳤다. 이래 늦게 퇴근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