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열 Sep 08. 2023

옛날 드라마를 보다.

 머리가 지저분해 보인다.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 지저분함을 견디기 힘이 든다. 거의 20년 단골인 이발소를 찾는다. 변함없이 맞아주시는 사장님 부부가 지키는 이곳은 시간이 비켜 간 듯 여전히 변함이 없다. 오래된 이발용 의자와 마주 보이는 거울과 각종 도구, 그리고 이발소 한편에 놓여 있는 작은 브라운관 TV까지.     


 이발용 의자에 앉는다. 오래된 브라운관 TV는 등지고 있어서 화면은 볼 수 없다. 그래서 마치 라디오를 듣듯이 TV를 시청한다. 아니 청취한다. 주로 듣게 되는 건 ‘용의 눈물’이나 ‘왕건’ 같은 오래전에 인기 있었던 드라마인데, 오늘은 회장님이 나오고 일용엄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전원일기’이다. 요즘은 옛날 드라마를 하루 종일 방영하는 채널이 있단다. 듣기만 하는데도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면서 은근히 재미있다. 깔끔해진 머리와 오래된 드라마를 추억으로 품고 이발소를 나선다.     


 며칠이 흘렀다. 옛날 드라마도 재미있더라는 생각에 OTT 플랫폼을 검색해 본다.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뒤적였더니 ‘수사반장’이 떡하니 올라와 있다. 그 옛날 불타는 정의감으로 시청했던 그 수사반장.

 300회, 400회 등 특집으로 방영된 에피소드가 등재되어 있다. 우선 가장 오래된 에피소드를 시청한다. 근데 이상하다. 뭔가 엉성하다. 스토리도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그때는 엄청 재미있었는데. 그럼에도 꾸역꾸역 시청한다. 화면을 닫아버리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열악한 세트장, 약간은 촌스러운 표현 방법, 그때의 옷차림, 돈가스 1,500원이 적힌 입간판이 보이는 거리, 도덕적이고 신파적인 대사, 지금은 많이 늙어버린 배우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 배우 생활을 접어버렸든가 아니면 이미 타계하셔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그것이다.  

   

 내친김에 특집 에피소드 한편을 더 시청하기로 한다. 이제는 연기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후일 연극계에서 일인극의 대가가 되신 분의 연기, 한동안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분의 연기를 보면서, 저분들도 젊었을 땐 저렇게 단역이나 조연을 했구나 싶기도 하고,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다르다고 후일 대배우의 반열에 오르는 분들의 연기를 보면서 저 때부터 남달랐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문득 TV 화면 속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부터 화려한 주연이었던 분이 대배우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젊었을 땐 단역, 조연을 전전하시던 분이 지금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종횡무진 활약하시는가 하면, 그 옛날 그렇게 잘 나가시던 분이 소리 없이 스러져 가버린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사도 마찬가지 아니려나? 금수저로 태어나 끝까지 금수저로 살아가는 분도 있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여 흙수저가 되어 버리는 분도 있고, 흙수저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금수저가 되는 분도 있고, 불만을 붙안고 사느라 흙수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한 편의 드라마가 주연, 조연, 단역이 어우러져야만 하듯이, 금수저 흙수저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게 인생사 일 게다.     


 옛날 드라마의 추억에서 시작하여, 주저리주저리 사는 얘기까지 와버렸다. 쓸데없이. 어쨌든     


 가끔은 옛날 드라마를 볼 것 같긴 하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 사람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은 사람은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니. 


오지호-화백의 부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