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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Sep 20. 2023

여백의 미

 시간의 여백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무슨 일과 무슨 일 사이 잠깐의 틈이 생기거나, 누구를 기다리거나 할 때의 자투리 시간이 나면 모바일 게임을 하곤 한다. 젊었을 때는 순발력이 필요하고 속도감이 있는 자동차 게임이나 슈팅 게임을 주로 했는데, 이제는 나이와 함께 사라져 버린 순발력 때문에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퍼즐게임을 한다.

 하나의 스테이지를 풀고 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데, 어떤 스테이지는 금방 풀어버리지만 어떤 스테이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애를 먹인다. 물론 풀리지 않는다고 현질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게 뭐라고 말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이게 또 웃긴다. 그냥 같은 색깔의 퍼즐만 맞춘다고 되는 게 아니다. 주어진 스테이지에서 부서야 할 장애물에 따라 전략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거다. 한 번에 부서지는 장애물이 있고, 몇 번의 타격을 받아야 부서지는 게 있는가 하면, 열렸을 때는 부서지지만 닫혀 있을 때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 장애물에, 점점 많아지는 자가 번식형 장애물도 있다. 이런 장애물의 성격에 따라 사용하는 무기를 달리해야 하며, 공격하는 순서도 달리 해야 한다. 놀자고 하는 일인데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거다.      


 매일 운동 삼아 파크골프를 한다. 취미가 되기 전엔 저게 무슨 재미가 있고, 무슨 운동이 될까 했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도 아니고, 또 공이 창공을 향해 호쾌하게 날아가는 것도 아니어서 말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아니 생각만큼 재미있진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래서 타수를 세기 시작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모든 일에 욕심을 내게 되어 있나 보다. 슬금슬금 더 잘 치고 싶어지는 거다. 주어진 홀의 특성을 파악한다. 타수를 줄일 수 있는 홀과, 욕심을 내면 손해를 보는 홀이 있다. 그에 따라 공을 치는 방법을 달리한다. 홀 가까이 보내고자 하는 무리한 어프로치와 먼 거리에서 홀인을 하려는 무리한 퍼트를 참아낸다. 득 보다 실이 많은 행위이다. 조금씩 타수가 줄어든다. 줄어드는 타수만큼 재미는 늘어난다.      

 동반자들과 게임을 한다. 개인전을 할 때도 있고, 부부의 점수를 계산할 때도 있다. 전체 홀의 점수를 계산할 때도 있고, 코스별 점수를 계산할 때도 있다. 게임 룰에 따라 공을 치는 방법을 달리한다. 이 역시 놀자고 하는 일인데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 자체가 전술과 전략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어릴 때 학업성취의 경쟁에서부터, 진학, 취업, 승진 경쟁과, 동종 업계에서 수위를 차지하려는 경쟁, 큰일을 하기 위한 선거에서의 경쟁 등을 전투에 비유한다면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느낄 사이도 없이 마치 숨을 쉬듯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 보내기 위한 모바일 게임이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시간부터,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 그리고 수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인간관계를 포함한 모든 순간을 말이다. 그러니     

 가끔은 비워보자. 시간도, 생각도, 그리고 무엇보다 욕심도.


우리 삶의 시간에 ‘여백의 미’라는 게 있으면 한결 아름답지 않을까? 물론, 쉽진 않겠지만.


임직순-소나무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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