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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Oct 02. 2023

골 때리는 그녀들(2)

 접전이다. 심하게 팽팽한 경기이다. 한 골씩 주고받은 점수가 유지되는가 했더니 균형이 무너진다. 이제 경기 종료까지 7초가 남았단 다. ‘저 팀이 이겼구나!’하고 눈길을 화면에서 거둬들인다. 그 순간 아나운서의 “골~~~”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화면으로 다시 눈길을 돌린다. 종료 1초 전에 동점 골이 들어간 거다. 골을 만들어낸 선수와, 팀 동료와 감독이 얼싸안고 기뻐한다. 그 환희가 화면을 뚫고 바깥으로 나올 기세다.      


 이제 승부차기에 돌입한다. 버저비터에 가까운 골로 동점을 만든 선수가 골키퍼로 등장한다. 저래도 되나 싶다. 첫 골을 막아낸다. 막아낸 팀의 선수도 골을 넣지 못한다. 두 번째 골도 막아낸다. 이 팀도 또 실축한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오히려 몸을 굳게 한 것 같다. 어라! 세 번째 골도 막는다. 이쯤 되면 이 팀의 기세가 올라 넣을 법도 한데 또 실축한다. 이제 네 번째 골이다. 근데 이걸 또 막아낸다. 네 번째 킥하는 이 팀의 선수는 담력이 있나 보다. 드디어 골을 기록한다. 이제 다섯 번째의 골을 막아내면 이기는 팀이 된다. 킥하는 선수가 더 긴장한 것 같다. 슛한다. 키퍼가 걷어낸다. 후반 1초 전에 동점 골을 터트린 팀이 승리를 거머쥔다.

 수훈 선수는 당연히 동점 골을 기록하고, 승부차기에서 키퍼로 나서서 5골을 다 막아낸 선수이다. 이런 극적인 축구 경기가 있을 수 있을까?     


 다른 경기이다. 골대에 근접한 위치에서 프리킥이 선언된다. 직접 슛도 가능한 거리이다. 이런 프리킥은 세컨드 볼이 엄청 중요하단다. 그래서인가? 프리킥을 얻은 팀의 골키퍼가 골대를 비우고 공격에 가담한다. 또 저래도 되나 싶다. 슈팅한다. 몸에 맞고 흐른다. 세컨드 볼을 따낸 상대 팀이 빈 골대를 향해 돌진한다. 기회가 위기가 되고,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이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다. 이런 이상한 전략을 구사하는 축구 경기가 있을까?


 있다.     


 여자 연예인들이 축구 경기를 하는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얘기이다. 드문드문 보던 시청자에서 어느덧 매회를 챙겨보는 충성스러운 시청자가 되어버렸다. 드문드문 축구 같았던 엉성한 실력이 이젠 제법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고, 개인기도 볼 수 있는 실력으로 성장하였고, 한때 주름잡던 국가대표 출신 감독들의 각각 다른 스타일의 리더십과,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아쉬워하는 모습도 소소한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변함없이 눈길을 잡아놓는 건 그녀들의 축구에 대한 진정성과 즐기는 모습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어떤 일이 즐거우면 자신도 모르게 그 일에 집중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어떤 분야에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즐김을 넘어서는 극한의 고통을 겪어야 할 테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축구를 즐긴다. 수많은 킥과, 세트 플레이와 패스를 연습하는 과정을, 경기에서 이기려고 애쓰는 그 시간을, 승부차기에서 초조함과 불안함까지.     


 승리에 수훈을 세운 선수가 인터뷰한다. 축구가 재미있고 즐겁단다. 그리고 예능인데 어느새 다큐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렇다. 시청자의 관점에선 다큐 같은 리얼한 예능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다. 꼬박꼬박. 하긴 박지성 같은 유명한 선수도 빼놓지 않고 시청한다니 뭐.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사람들은 잘하는 걸 즐기는 걸까? 즐기는 걸 잘하는 걸까?’


제프 엘로드-토끼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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