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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Feb 28. 2024

머나먼 그곳, 강원(1)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더니,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이지 않고 잘 자라더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들어가 잘살고 있는 딸을 가진 지인이 있다. 그 딸이 설악산 근처에 핫플인 리조트 숙박권을 보냈다고 한다. 남의 딸 찬스도 쓰는 게 현명한 일이고, 같이 가자고 할 때 같이 가는 게 예의지 않나? 그래서 떠난다. 머나먼 강원도로.     


 물론 배신자들도 있었다. 함께하자 해놓고 이런저런 사유로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4쌍 중 2쌍만 출발한다? 이건 좀~~. 그러나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나이지 않은가?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되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쉬었다 또 달린다. 커피 한잔하고 또 달린다. 멀다. 강원도. 그러나 종착지 없는 길이 있을 리 없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원주의 아늑한 계곡을 지난 산자락에 자리 잡은 뮤지엄 산(Museum SAN). 무슨 박물관인지 모르겠으나 입장료가 꽤 비싸다. 비싼 곳은 당연히 비싼 이유가 있겠지 하며 들어선다.     


 H빔을 소재로 한 거대한 조형물이 푸른 잔디 위에서 우릴 맞는다. 푸른 하늘을 등 뒤에 이고.

 눈길을 발길이 향하는 쪽으로 돌리니 하늘과 맞닿은 박물관 건물의 지붕 선이, 편안한 색깔의 돌이 점점이 박혀있는 돌벽이, 사이사이로 숲이 보이는 공간이, 건물의 그늘과 조형물과 나무가 반영되는 얕은 물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건축물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리고 설치 예술작품을 보는 그런 곳이구나 싶다.      


 제임스 터렐이라는 처음 듣는 작가의 설치 예술작품을 관람한다. 시선을 두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원형의 하늘을 보는 작품과, 한 계단씩 올라갈수록 하늘과 가까워지는, 하늘의 문을 향해가는 듯한 느낌의 작품, 색상의 변화에 따라 주변의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작품 등을 감상한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려나? 보이는 대로 믿는, 믿고 싶은 대로 보는 확증편향을 버리라는 의미이려나?     


 바깥으로 나오니 왕릉의 크기쯤 되어 보이는 돌무덤 같은 것이 여러 개 조성되어 있다. 스톤가든이라는 곳이다. 근데 뭐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지 그런 느낌.     


 박물관으로 향한다. 안도 타다오라는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인 건축가의 작품들을 설명해 놓은 공간이다. 관심이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그냥저냥 둘러본다. 그런데 건물의 내부가 뭔가는 다르다. 천정의 틈과 그 틈의 공간이 주는 느낌, 일직선의 긴 복도와 복도 끝의 빛, 무심코 본 바깥의 풍경과 창의 어울림 등이 눈길을 잡는다. 그러다 스톤가든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선다.     


 봉곳한 돌무덤들이 주변 산세와 잘 어우러져 편안한 광경을 연출한다. 가까이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이 다르구나, 그리고 가까이서 봐야 할 것이 있고 멀리서 봐야 할 것이 있구나 싶다. 가까이서 본 사람과 멀리서 본 사람이 다르듯이, 그리고 가까이해야 할 사람이 있고 멀리 해야 할 사람이 있듯이.     


 명상관으로 향할 시간이다. 왕릉처럼 또는 이글루처럼 생긴 둥근 모양의 건축물 속으로 들어간다. 둥근 지붕에 일직선의 채광창이 있는 실내는 넓고 편안하다. 강사의 진행에 따라 복식호흡과 몸을 이완시킨다. 잠이 오는 분은 살짝 주무셔도 좋단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설마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우리 일행 중에, 누구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한결 편안해진 몸과 마음으로 명상관을 나선다. 그리고 명상의 효과일까? 배가 고프다.     

 여행의 즐거움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음식이다. 수고를 아끼지 않고 미리 검색해 온 인근 맛집에서 간장게장과 굴비구이를 먹는다.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 어쩌면 가장 큰 행복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금산으로 향한다.


미로-세 가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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