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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Jan 04. 2024

얼굴

 배철수라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DJ가 있다. 30년 이상 한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베테랑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일 테고, 그만큼 진행을 잘한다는 것일 거다. 그런데 이분의 방송만큼이나 지속해 발전하는(?) 것이 있었으니…

 이분의 얼굴이다.     


 처음 방송에서 본 것은 대학가요제였다. ‘활주로’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탈춤’이라는 노래를 드럼 연주와 함께 불렀는데, 노래도 강렬한 기억이지만 더 강렬했던 건 큰 키에 비쩍 마른 빈티 나는 얼굴이었다. 그랬던 이분의 얼굴이 슬금슬금 나아지더니 중장년이 되어서는 멋있어지고, 노년으로 살짝 진입한 지금은 온화하고 품위 있는 얼굴이 되었다. 무엇이 이분의 얼굴을 변화시킨 걸까?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기고♬ 탈춤의 첫 소절이다. 탈이 얼굴을 가리는 거야 당연하지만 마음도 숨긴단다. 그런가?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얼굴은 마음을 나타내는 거울 같은 것이다. 바꿔 말하면 마음이 보이는 것이 얼굴이라는 거다.      


 얼굴은 기쁨, 슬픔, 노여움, 즐거움, 반가움, 불편함, 짜증, 아쉬움, 사랑, 좋아함, 비굴함 등등의 수없이 많은 마음을 표정이라는 이름으로 남에게 비친다.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비치는 표정은 끊임없이 바뀔 테지만, 그 표정의 총합이 태어날 때의 주어진 얼굴에 자기의 삶이 빚어낸 얼굴을 더해가는 것 아닐까 싶다. 밝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밝은 얼굴로, 온화한 표정을 많이 지은 사람은 온화한 얼굴로, 화가 많은 사람은 화난 듯한 얼굴로, 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얼굴로, 차가운 사람은 차가운 얼굴 등등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굴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이다. 닮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똑같은 얼굴은 없다. 눈썹과 눈, 코, 입, 귀 등 몇 가지의 구성으로 전 세계 80억 명의 각각 다른 모습을 만들어낸다. 물론 피부색과 눈, 코, 입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 다른 얼굴이 될 테고, 거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물리적인 변화와, 마음이 빚어내는 얼굴의 변화도 있을 테니 그렇겠지만,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얼굴을 가진다는 것. 경이로운 일 아닌가? 그리고 또     


 경이롭게도 얼굴은 만들어진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흔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링컨 대통령이 한 유명한 말이다. 무슨 말? 했는데 맞는 말이었다. 젊었을 때 잘생기고 못생김으로만 나뉜 얼굴이 40년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 지니고 살아온 마음에 따라, 지어온 표정에 따라, 살아온 방법에 따라, 잘생겼으나 비굴한 얼굴이 될 수도 있고, 못생겼으나 품위 있는 얼굴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된다. 탈춤의 가사처럼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기는♪ 얼굴이 될지,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려지는♬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그리운, 그리고 좋은 얼굴이 될지는 지금 내가 지닌 마음과 그 마음이 짓고 있는 얼굴 아니려나? 


모딜리아나-소녀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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