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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Dec 14. 2023

김장 김치 한 포기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어머니는 으레 김장 김치 담그기에 종종걸음을 치곤 했다. 어머니에게는 그 일이 월동 준비를 하는 고된 노동이었음이 분명 하나, 어린 나에게는 한바탕 즐거운 축제일이었다.      


 간간하게 절인 배추에다 붉은 고춧가루와 젓갈, 무채와 청각 등으로 맛을 낸 양념을 쓱쓱 발라서 독에다 차곡차곡 쟁여나가는 바쁜 어머니 곁을 하릴없이 빙빙 돌고 있노라면, 어머니께서는 양념 잘 묻은 노란 속 배추 잎사귀를 뚝 떼서 입에 넣어 주곤 했는데, 그 짭짤하면서 구수한 김치의 맛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그리운 맛이다.      


 그렇게 담근 김치는 집 뒤쪽 땅속에서 익어가면서 겨우내 우리 가족의 소중한 먹을거리가 되었는데, 끼니마다 밥반찬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양식을 늘리려고 종종 끓이던 김치 국밥의 주재료이기도 하였다. 목이 메어 넘기기 어려운 고구마를 먹을 때도 훌륭한 친구가 되었고, 기나긴 겨울밤 최고의 간식거리인 김치전의 주인공 역시 김장 김치였다.    

  

 시간이 봄을 향해 줄달음치면 김치는 시큼한 맛으로 변해 가는데, 시큼한 김장 김치로 끓여내는 김치찌개는 보글보글 끓는 소리에 군침이 넘어가고 얼큰한 맛에 숟가락이 쉼 없이 가는 훌륭한 먹을거리였다. 그런가 하면 너무 시어서 버려야 할 것 같은 묵은지를 씻어서 쌈으로 먹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별미였다.      


 그러고 보면 김치는 여러 가지 맛으로 즐거움을 주는 음식인 것 같다. 음식은 날것의 맛이 있고, 굽거나 삶는 등 익힌 맛이 있으며, 된장이나 젓갈, 요구르트처럼 삭힌 맛이 있는데 김치는 이 세 가지의 맛을 다 가지고 있다. 담그자마자 금방 먹는 생김치는 날것의 맛일 것이고, 김치전이나 김치찌개는 익힌 맛이며, 묵은지는 삭힌 맛이니 말이다.      


 김치 이야기를 하려고 슬그머니 검색해 본다. 김치는 식이 섬유소를 듬뿍 함유한 대표적인 저열량 발효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변비와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단다. 그리고 콜레스테롤 감소와 동맥경화 예방에도 좋으며, 피부 노화 억제와 항암효과 그리고 면역증강 효과까지 있단다. 이 정도면 만병통치약 수준 아닌가?      


  부지런한 계절이 부지런히 흘러 또다시 김장철이다.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자리는 아내의 자리로 바뀌어 이젠 아내가 김장 김치 담그기에 종종걸음이다.     


 부지런한 계절이 부지런히 흐르면 며느리가 아내의 자리를 대신할까? 아니면 김치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먹을거리가 되어 버릴까?     


 아무래도……


장욱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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