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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Dec 04. 2023

느리게 살기와 늦는 습관

 좋아하고 만나면 편한 사람들과 만나는 날이다.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전에 도착하고자 외출 채비를 한다. 약속 시간 10분 전은 먼저 도착하여 오는 사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고, 차가 밀리는 등의 일이 생겨도 시간을 어기지 않아서 좋다.     


 만나는 장소를 향해 걷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다. 빨리 오지 않고 뭐 하냐는 농담이다. 시계를 본다. 10분 전이다. 부지런히 걸어서 도착한다. 시계를 보니 7분 전이다. 늦은 건 아닌데… 늦은 건가?     


 약속 시간이 지났다. 아직 자리 하나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 또 그 사람이다. 언제나, 항상, 매번 늦는 그 사람.

 사연은 항상 있다. 어딜 다녀오는 길인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서, 10분 정도 걸으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리네, 약속 장소를 찾느라 애먹었다는 둥.

 뭐 중요한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친목을 도모하는 자린데 늦으면 어떠랴. 근데, 약속 시간에 늦은 이분에게는 빨리 오지 않고 뭐 하냐는 전화를 했던가? 늦는 습관이 늦어도 되는 권리가 되어 버린 거?    

 

 느리게 살기로 했다. 아니 느리게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매사에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늦게 일어나고, 천천히 밥 먹고, 느긋하게 차 한잔 하고, 책도 좀 읽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운동하고, 산책하고, 이러면 느리게 사는 건가? 맞는 것 같은데, 맞는 건가?     


 늦게 일어난다는 거 예전보다 겨우 30분 늦게 일어나는데 그래 봐야 어차피 새벽이다. 후다닥 새벽 운동 가던 것을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거나, 뭔가 끄적이는 시간으로 바뀐 게 느리게 살기? 그래, 이건 인정.     


 천천히 밥 먹기는? 출근 시간이 없으니 시계를 흘금거리며 밥 먹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천천히 먹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숟가락을 놓자마자 설거지에 돌입하니 글쎄.     


 차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아 신문을 펼친다. 쓰윽 훑어본다. 10~20분이 흐른다. 찻잔은 진작에 비워졌고, 신문도 덮었다. 이게 느리게 인가? 후다닥 인가?     


 영화를 보고자 마음먹는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고, 극장엘 가고, 표를 사고, 자리에 앉아 상영시간을 기다리고, 그런 거… 없다. TV를 켜고, 리모컨으로 넘기고 또 넘기고, 그래서 고른 걸 시작하면 끝이다. 이런 걸 OTT라고 하던가? 이것도 딱히 느린 것 같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책 읽는 시간도 그 시간, 음악 듣는 것도 그 시간, 운동하는 시간, 산책하는 시간도 항상 그 시간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한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직도 그 시간에 그 일을 하지 못하면 노심초사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스스로 시간에 제약받는 초조한 마음을 가진 삶이 과연 느리게 살기인가 싶으니 말이다.     


 느리게 산다는 건 마음을 편하게 먹고 하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란다. 느리게 살기는 느리게 살기답게 느리게 내 몸에 밸 테니, 당장은 느리게 산다는 이유로 늦는 습관을 지니진 말아야겠다. 느리게 살기는 나만의 문제이고, 늦는 습관은 누군가의 시간을 뺏는 행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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