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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Nov 13. 2023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 그래서 떠난 경주 여행2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5시 30분이다. 주섬주섬 챙겨 입고 숙소를 나선다. 보문호수 산책길로 향한다. 좋다. 새벽이 주는 상쾌함과, 길 한편으로 우거진 나무들과, 다른 편의 호수와 인적이 드문 길의 호젓함과, 살짝살짝 뒹구는 낙엽의 바스락 거림이.     


 길가의 활엽수들은 반쯤 잎을 떨어뜨린 상태이다. 이미 떨어져 버린 낙엽도 있고, 갈색으로 물들었지만, 가지에서 버티고 있는 잎사귀도 있고, 지금까지 초록빛을 유지하고 있는 싱싱한 잎도 있다. 저 나뭇잎들도 먼저 싹을 틔운 순서대로 낙엽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먼저 태어난 순서대로 죽는 게 아닌 것처럼. 그리고     

 아직 버티고 있는 저 나뭇잎들도 이제 곧 닥쳐올 차가운 공기와 바람에 언젠가는 떨어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 것처럼.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은 가능하면 초록빛의 저 나뭇잎처럼 싱싱하게 사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쓸데없이.     


 반대편 호수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멀리 가로등 불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이 호수는 보문호수가 아니라 보물 호수구나 싶다. 보석처럼 수면이 반짝이는 것도 그렇고, 수많은 관광객을 유혹(?)하여 이곳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분들에게 끊임없는 경제적 이익을 주니 말이다. 이것도 쓸데없는 생각. 이래서 혼자 걸으면 안 된다니까.     


 체크아웃하고 불국사로 향한다. 제대로 수학여행스러운 경주 여행을 하겠다는 거다.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마련하여 정문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촬영한 다음 탐방을 시작한다. 그 옛날, 교과서에서 많이 봐왔던 정면의 계단부터 다보탑, 석가탑을 실물로 영접하고, 본당부터 부속 건물들을 둘러본다. 참 좋은 곳에, 참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절이다. 그러니 이름조차도 佛國 아니겠나!     


 오래전 일본 여행 때의 일이다. 고가도로를 지나고 있었는데, 내려다보이는 곳이 공장지대의 뒤편이었다. 대부분 앞쪽은 깨끗하나 뒤편은 잡동사니들이 쌓여있기 마련인데,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딜 가면 꼭 뒤란을 찾아보게 된다. 그래서 슬그머니 본당 뒤편으로 발길을 돌린다.     


 빗질 자국이 남아있는 잘 다져진 흙 위에 성급히 떨어진 낙엽 몇 조각이 보인다. 정갈하다. 그리고 앞쪽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이곳은 한적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과 맞닿은 매끈한 지붕 선과, 지붕만큼 높은 곳에서 늘어뜨린 나뭇가지의 갈색빛과 그 사이로 보이는 높푸른 가을이 눈에 담긴다. 예쁘다. 눈에 담긴 그 풍경을 얼른 사진으로 주워 담고 돌아선다.      


 불국사 하면 생각나는 기억 한 토막. 중학생인 내가 배움이 목적인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그러나 불국사를 본, 그리고 설명을 들은 내용들은 불행히도 전혀 기억에 없다. 대신 불국사 부근 숙소에서 친구들과 낄낄거렸던 일과, 먼저 잠든 녀석들의 다리에 불침을 놓던 일과, 그걸 맞지 않으려고 애써 잠을 참던 것과, 그러다 어느 순간 모두 잠들어버렸던 것과, 그렇게 밤을 지새운 다음 날 버스에 올랐을 때 시동이 걸리지 않아 모두 고물 버스를 밀던 일과, 시동이 걸리면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매연에도 즐거워했던 어린 기억.    

  

 어린 기억의 불국사와 지금의 불국사에서 빠져나와 석굴암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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