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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Oct 31. 2023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 그래서 떠난 경주 여행 1

 사는 지역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종사했거나 지금 하는 직업군도 다르지만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는 모임이 있다. 그 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번 모임에는 새로운 회원 부부도 함께하게 되어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하다.     


 맛있는 음식과, 이런저런 얘기가 어우러진 식사를 마치고 습관처럼 카페로 이동한다. 보통은 같은 테이블에 길게 늘어앉는데, 어라! 이곳은 그렇게 큰 테이블이 없다. 그래서 남자들 따로 여자들 따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여자분들 테이블에서 call이 온다. 왜?     


 다음 모임에는 1박을 하잔다. 여자분들은 합의가 되었단다. 뜬금없다. 그리고 이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통보라는 생각이 든다. 반대할 이유도 없지만 반대해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럼 가야지. 그래서 떠나게 된 경주 여행.     


 순간순간의 시간은 길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쏜살같다. 어느새 여행을 떠날 날이 가을을 안고 다가왔다. 경주를 향해 출발한다. 목적지는 운곡서원. 오래된 은행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란다. 그런데 멀다. 많이. 도착해 보니 경주이긴 하나 거의 포항에 가까운 곳이다. 먼저 도착하신 분들과 반가움을 나누고 서원을 둘러본다.      


 자그마한 서원과, 그 곁을 지키는 350년이 넘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와, 그것을 비추는 가을의 햇살과 뒷산의 나무와 산 능선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노란 은행잎과 뒷산의 단풍이 그려내는 절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본 영화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이다. 말썽꾸러기 제제는 라임 오렌지 나무와 대화를 하고, 그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말을 타고 여행하며, 대나무 숲에서 온갖 동물들과 함께하는 상상을 하는 어린이이다. 모두 말썽꾸러기 제제를 탓하지만, 제제의 상상력을 알아본 뽀르뚜가 아저씨는 제제의 대나무 동물원을 세계 최고의 동물원이라고 칭찬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렇게 머릿속에서 세계 최고의 단풍을 그려내며 운곡서원을 떠난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한다. 만찬 자리는 언제나 그렇듯, 아니 언제나 보다 더 즐겁고 시끌벅적하다. 여행이 주는 낯섦, 들뜸, 해방감 뭐 그런 것들이 작용해서일까? 우아하게 별다방에서 이브닝 커피까지 한 잔씩 하고는 숙소로 출발한다. 그런데 다들 곧바로 들어가긴 싫은가 보다. 자연스럽게 보문호수로 발길이 향한다. 그렇지 이런 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하는 건 반칙이지.   

  

 조금 떨어진 곳 호숫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다리를 다쳐 걷는 속도가 늦은 아내와 조금 늦게 도착해 보니 1인 버스킹을 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분들은 제대로 관람객 모드에 돌입해 있고. 약간의 취기가 흥겨움을 더하는 모양이다. 2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노래하고 있다는 거리의 가수에게 노래 신청까지 하면서 도무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살짝 추워지는데. 쩝.     


 숙소에 들어와 맥주와 과일, 과자 등을 바닥에 차려놓고 둘러앉는다. 이게 습관일까? 관습일까? 여행지에서 항상 해왔으니 개인으로 보면 습관일 테고, 옆방에서도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하는 관습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로 밤은 깊어져 간다. 11시가 넘어서야 각자의 방으로 퇴근한다. 큰일 났다. 9시면 자는데…     


 그리곤 밤새 뒤척인다. 경주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시애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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