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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Mar 16. 2024

머나먼 그곳, 강원(2)

 소금산.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이란다. 기대를 안고 출발.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 출렁다리 앞에 선다. 와이어는 튼튼해 보이지만 구멍이 뚫려있는 철판 바닥이 아찔하다. 살짝 있는 고소공포증 때문이겠지! 애써 태연한 척 다리를 건넌다. 물론 시선은 절대 아래로 향하지 않고 저 멀리 바라보면서.     


 출렁다리는 무사히 건넜지만 아찔함이 계속 이어진다. 이번엔 벼랑길 잔도를 지나야 하니 말이다. 바깥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잔도의 안쪽으로만 걷는다.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혹시 잔도가 무너지면 안쪽이나 바깥쪽이나 다를 바는 전혀 없을 텐데… 사람이란 참!     


 문득 초한지가 떠오른다. 항우의 위세에 눌린 유방이 한중으로 들어갈 때 절벽에 구멍을 뚫어 만든 잔도를 불태웠다는 얘기. 어떻게 그 옛날 잔도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수많은 병사 중에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난간도 없는 그때의 잔도를 어떻게 건넜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 그렇게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는 전망대답게 당연히 높은 곳에 있다. 지금은 무슨 이유인지 출입 금지된 소금산 정상을 눈에 담고는 지나쳐 온 저 아래를 내려다본다. 함께 하는 분이 여기에 집라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외줄 와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쓩’하고 내려가는 그것. 재미있을 것 같다. 가만 진짜 재미있을까?      


 작대기 하나의 초보 군인일 때의 일이다. 지지리 재수도 없지, 자대에 배치받자마자 유격훈련 기간이었으니. 이 코스 저 코스를 돌면서 훈련한다. 그러다 드디어 활강이라 불리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저 아래 강물로 외줄에 걸린 도르래를 타고 내려가는 코스 차례가 된다. 이런저런 조교의 설명이 끝나고 자원할 사람 나오란다. 아무도 안 나간다. 나만 그 높이가 겁나는 게 아닌 거다. 한바탕 PT체조가 지나가고 다시 자원자 나오란다. 또 아무도 안 나간다. 그러자 조교가 한 명을 지목하는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왜 그렇게 찾아오는지, 그게 나였다.     


 출발선에 선다. 높이가 주는 두려움이 장난이 아니다. 두려움을 잠재울 고함을 몇 차례 지른 후 출발한다. 그런데 좀체 속도가 나질 않는다. 언제 저 끝까지 가려나? 싶다. 경사와 몸무게에 의해 도르래가 굴러가는 것이니 처음엔 속력이 나지 않을 수밖에. 중간쯤 왔으려나 싶을 때부터 엄청나게 빨라진다. 빨라지는 만큼 높이도 낮아지고 재미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순간 앞에 있는 조교가 빨간 깃발을 들어 올린다. 다리를 들어 올리며 손을 놓고 강물에 첨벙 도착한다. 해내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래서 다음 유격 때 또 했냐고? 그럴 리가. 신나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한 것이니.     


 만족스러운 원주를 떠나 두 시간 만에 숙소가 있는 고성에 도착한다. 아파트형의 리조트가 아니라 단독주택형의 리조트다. 주변이 잘 정돈되어 있고 숲 속이라 피톤치드가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게다가 고개를 드니 설악의 울산바위가 펼쳐져 있다. 이토록 좋은 자리라니, 역시 남의 딸 찬스.      


 저녁은 뷔페란다. 뷔페의 단점은 음식은 많은데 먹을 건 없다는 느낌, 맛이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맛있는 음식도 없다는 것이고, 장점은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만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뷔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로 한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 문제는 좋아하는 게 와인이라는 것이지만.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설렘보다는 잘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다가온다는 건 늙었다는 것이다. 이미 늙어버렸으므로 설렘보다는 걱정을 부둥켜안고 잠자리에 든다.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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