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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Apr 04. 2024

머나먼 그곳, 강원(3)

 눈을 뜬다. 비교적 잘 잔듯하다. 리조트 주변을 산책한다. 날씨는 맑고, 공기도 좋고, 경치마저 좋다. 덩달아, 아니 당연히 기분도 좋다. 잘 정돈된 산책길을 걷는다. 사슴도 보고 양도 본다. 얘네들을 보니 어젯밤 혼자 집을 지켰을 두유(반려견)가 생각난다. 두유의 눈망울도 사슴 못지않게 영롱한데…     


 아침 식사 후 숙소를 나선다. 설악 케이블카를 탈 계획이다. 제법 이른 시간인데도 설악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차량이 늘어난다. 늘어난 차량만큼 사람도 많고, 사람이 많으니 케이블카 타기도 쉽지 않다.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그동안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로 한다.      


 고개를 들어 설악산을 보니 숙소에서 본 울산바위가 여기서도 보인다. 바라보는 장소가 다르니 보이는 모양이 다르다. 사람이 그러는 것도 그래서일까? 자기의 위치나 처한 환경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거. 또 또 쓸데없는 생각. 머리를 한 번 흔들고 신흥사로 발길을 향한다.     


 사람의 발길이 많은 만큼 잘 꾸며진 절 앞에 홍 벚꽃이 피었다. 희소성의 원칙은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귀한 만큼 좋아 보이고 귀한 만큼 예뻐 보이니… 한동안 촬영 기사 노릇을 한다.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고, 멀리서 찍고, 가까이서 찍고. 이렇게 찍은 사진 보긴 할 건지.     


 케이블카에 오른다. 케이블카를 탈 때는 산 아래쪽을 볼 수 있는 창가가 좋단다. 그래서 그렇게 위치를 잡는다. 운행 시간은 딸랑 5분. 신흥사와 그 뒤로 보이는 울산바위의 경관이 조금씩 멀어진다. 발아래 높이가 조금 아찔하다 싶을 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마치 분재 같은 작고 예쁜 나무들이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의 생명이 경이롭다.      


 10여 분을 걸어 권금성에 오른다. 권 씨와 김 씨 성을 가진 장사가 난을 당하자 적과 싸우기 위해 하룻밤 만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워낙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 약간의 방책만 해도 성이 될 법하다. 넓게 펼쳐진 바위도 좋고, 어딜 향해도 배경이 좋다. 그래서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아랫배가 우물쭈물하기 시작한다. 큰일 났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일행은 사진에 빠져있고. 슬그머니 하산길로 향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잖는가?     


 급한 생리현상을 당할 건 아무것도 없다. 올라갈 때의 아름답던 경치가 급한 지금은 전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후다닥 화장실을 찾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이라는 것 별거 아니다. 그냥 속만 편안해도 세상은 아름다우니…     


 설악을 떠나 속초로 향한다. 소문난 문어집이 있단다.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바다 근처에 도착한다. 문어 요리는? 음~~~ 국물이 시원하긴 하다. 음식의 맛보다는 벽면에 쓰여있는 ‘문어지지 마’라는 글귀가 픽 웃음을 자아낸다.     


 집으로 향한다. 여행은 출발할 때도 설레고 좋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도 기분 좋다. 출발은 일상탈출이라는 기대감에서 좋을 테고, 여행이 끝났을 때는 편안한 그리고 익숙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좋은 것이리라.     


 산다는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익숙함과 생경함의, 정해짐과 정해지지 않음의, 잘 아는 곳과 잘 모르는 곳의, 일상과 일탈의 적당한 반복이 있기에 살 만하고 즐겁다는 것. 그래서 여행을 꿈꾸고, 또 떠나는 것일 테니.   


  

장욱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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