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왜 이런 걸 여행 계획에 넣어 가지곤, 이 스마트한 시대에 액자사진이 웬 말인가 했다. 그러다 언젠가 누군가가 가족사진을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서 암묵적인 동의로 이 숲에 도착했다. 푸르스름한 배경과 정장 차림과 어색한 웃음이 포인터인 스튜디오 촬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평상복에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스러운 포즈로 촬영한다는 건 좋았으나, 팔뚝에 근육이 생길 것 같다. 쩝!
엄마 아버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진작가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한다. 오랜 사회생활로 다져진 내공? 경험? 뭐 그런 건가? 동생 내외는 아직 웨딩 촬영의 느낌이고, 우리는 뭐 전쟁이었지! 그래서 이런 기분인 거다. 드디어 끝났다. 촬영.
숲을 떠나 스튜디오(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에 도착한다. 동영상처럼 촬영한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야 한단다. 엄마와 동생과 아내가 선별작업에 돌입한다. 모니터에서 사진을 넘겨 가며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데 아내는 곧 떨어져 나온다. 애들이 봐줄 리 없으니. 엄마와 동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오래 걸릴 것 같다. 아버지가 유휴 인력은 카페로 가잔다. 이건 뭐 당연히 call.
뒷좌석에 앉으니 앞자리에 앉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법 많이 비어버린 뒷머리와 구부정해진 어깨가 늙어 보인다.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함부로 하지 않는 말투를 보면 초로에 접어들었음이 확실하다. 아니, 60대이니 초로를 지난 건가? 예전보다 수명이 많이 늘었다니 초로인 걸로 하자.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다정한 부자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기대만큼의 아들이 아니었고, 기대와 현상과의 거리만큼 불편함이 있었다. 나는 불만이라는, 부모님은 불평이라는 불편함이.
엄마는 다른 애들이 하는 걸 나도 하게 하였고 비교하였고 차이를 힘들어했고 잔소리했고 그러면서도 챙겨주었고 보듬어 안아 주었지만, 아버지는 무심했고 단지 불만스러웠다. 그러다 가끔 상처를 주는 말을 툭 뱉기도 했다. 누구누구가 공부 잘하는 아들을 두어서 좋겠다더라고, 알고 보니 다른 집 아들이더라는 그런 얘기. 무심하면서 불만이 담긴 그래서 상처를 남기는 그런 말.
조금씩 기대를 내려놓으면서(엄마 아버지가), 조금씩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내가 철들어 가면서?) 불편함의 거리를 줄여오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 상처도 희미해졌고. 그리고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주고받는 것이니 기억에서 지우는 게 현명하기도 하고.
언제였던가 엄마가 집을 비운 날이었다. 같은 생각이었을까?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생각. 그날 아버지와의 술자리는 진지했고 잘 통했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고 의기투합했고 흥겨웠고 그랬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진 않았지만 말이다.
가끔 아버지와 술잔을 나눈다. 나는 이런저런 애로사항을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아버지는 경험치를 얘기하며 옛날을 추억한다. 소위 말하는 win-win이다. 아버진 그게 자랑스러운 눈치다. 그럴 거 같기도 하다. 말도 잘 나누지 않는 부자간도 있다니까 뭐. 그런데 이런! 딸만 둘인 나는 먼 훗날 이걸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더 낳을 수도 없는 일이고.
카페에 도착한다.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커피를 놓고 시야가 탁 트인 통유리를 통해 바깥을 바라본다. 양옆의 나무가 맞닿아 동굴처럼 하늘이 보이고 초록빛 작물이 근사한 배경이 되는 밭 앞에서 웨딩 촬영하고 있다. 사진에 별 관심 없는 내가 봐도 포토존이다.
몇 년 전에 우리도 저런 걸 했었지. 장밋빛이고 행복하기만 한 결혼생활을 상상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이 되어갔었지, 딸 들이 태어나면서 극기 훈련이 되어갔고. 지금 세상 행복한 저 신혼부부도 생활에 젖어갈 테지… 흠흠.
가족사진은 잘 나왔으려나? 아니 잘 골랐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