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by 김종열

반려견과 산책길에 나선다. 새벽의 조용함과 희붐한 밝기와 맑은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강아지도 같은 생각인지 쫄랑쫄랑 발걸음이 가볍다. 인도를 지나 아파트 단지 부근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 들어선다. 이런저런 수목과 이런저런 꽃나무와 잔디밭이 싱그럽다. 강아지가 잔디에서 킁킁대더니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바깥에만 나오면 반드시 하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슬기로운 배변 생활.


이젠 제법 능숙해진 손놀림으로 배변 봉투를 뒤집어 수거한다. 사실 처음엔 많이 주저주저했다. 어쩌다 애견인인 데다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그러나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일을 수행해 왔다. 그리곤 돌아서려는데 이런! 어떤 개념 없는 강아지 응가가 보인다. 아니지 개념 없는 애견인이 치우지 않은 거지.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나? 싶은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직도 저런 사람이 많다.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비벼 끄고 버린 사람, 일회용 커피잔을 담장 위에 고이 모셔두고 가는 사람 등등.


문득 성격 깔끔한 지인이 떠오른다. 공공 기관에서 정년을 맞은 후 특유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으로 절대 놀아서는 안 된다며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재취업한 분. 가끔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곳에 근무하는데도 고충 사항이 많단다. 운전 중 졸음이 오는 사람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에 무슨 일이 있으랴 싶은데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평화로운 곳이 아니란다.


화장실을 엉망으로 쓰는 사람, 차량에서 나온 쓰레기도 모자라 집에서 나온 쓰레기까지 내버리고 가는 얌체들이 있단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이 강아지 응가란다. 수거하여 변기에서 처리하거나 배변 봉투로 수거하면 될 텐데 슬그머니 그냥 가버리는 애견인들이 생각보다 많단다. 사랑에는 책임도 따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저걸 치울까?라는 생각이 스치지만, 선뜻 손이 나가질 않는다. 웃기게도 남의 집 강아지 응가는 만지기가 주저되는 것이다. 아직 진정한 애견인, 성숙한 문화시민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아는 애견인 중에 강아지 응가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치우는 분이 있다.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뜬금없이 라디오에서 들은 청취자 사연이 생각난다. 어떤 아가씨가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더란다. 그런데 갑자기 아랫배가 우물쭈물하더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다. 화장실도 없는 작은 공원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무 뒤편의 으슥한 곳에서 볼 일을 봤단다. 그런데 저 멀리서 레트리버 한 마리가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더란다. 황급히 수습하고 일어섰는데 그 뒤를 따라온 젊은 청년이 “죄송합니다. 목줄이 풀어져서요” 하며 레트리버와 돌아서려는 순간 그걸 보고 말았단다. 그리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런!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실례를 했네요.” 하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수거해서 떠나더란다.

반려견 배변과 관련 있는 얘기이니 뜬금없는 건 아닌가? 어쨌든 이렇게 뒤처리를 잘하는 개념이 있는 애견인들도 많다는 얘기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옛날에는 개똥을 수거하지 않았을 테니 자주 눈에 띌 만큼 흔했을 테고, 그 흔한 개똥도 정작 쓰려고 찾으면 구하기 어렵더라는 속담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엔 개똥을 약에 쓰려니 애견인들이 너무 잘 치워버려서 찾기 어려운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쓰~윽 스친다. 개똥뿐만 아니라 담배꽁초 등 다른 쓰레기들도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에 개똥을 치우다가 든 섣부른 개똥철학인가?


무제-모드루이스.jpg 무제-모드루이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