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해서 가끔, 혹은 종종 감상의 시간을 갖는다. 요즘은 OTT로 쉽게 볼 수 있어 대하는 주기가 ‘가끔’에서 ‘종종’으로 바뀐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폭력적이거나 싸움이나 전쟁을 좋아하는 성향은 아닌 것 같은데, 종종 전쟁 영화를 본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대개 전투씬 위주의 영화보다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피아니스트’ ‘책도둑’ 등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얘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을 담은 영화들이나, 실제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시청한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면 저렇게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전쟁을 과연 국민 대다수가 동의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당연히 아닐 것이다. 2차 세계대전도 민족적 전체주의와 다수결 원리 대신에 지도자 원리에 기초하는 히틀러의 나치즘 때문일 테고, 일본의 태평양 전쟁도 군부의 군국주의 때문일 테니. 그러나 이상한 건 당시의 자료 화면을 보면 독일 국민이 열광하고 동조하는 모습이나, 일본 비행사의 자살 공격인 가미카제는 마치 다수의 선택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래서 의심하게 된 거다. 다수의 선택이 과연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 건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다수의 의견은 언제나 옳은가의 문제는 접어두자. 다수의 의견이 옳을 때가 많을 것이고, 또 틀린 결정이라 할지라도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선택한 것이고, 더 나아가 성숙한 사회일수록 소수의 의견도 살펴볼 테니. 문제는 다수의 선택이 다수의 의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라는 농담이 있다. 농담인데 맞는 말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이 관철될 때가 많다는 말이다. 무슨 무슨 회의에 참석한다. 어떤 안건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한 분이 의견을 피력한다. 다른 분이 반대 의견을 말한다. 반대 의견에 마음이 상했는지 목소리가 커진다. 각각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의견만 큰 소리로 주장한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 의견이 관철된다. 과연 그 결정은 회의 구성원 전체의 결정이었을까?
민주적인 가정의 가족회의에서의 결정이 가족 구성원 전체의 의견이 반영된 것일까? 그 가정의 주도권을 가진 엄마나 아빠의 의견대로 결정된 건 아닐까?
계 모임이나 동호회에서의 사소하고 잡다한 일들의 결정은 그 구성원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것일까?
어떤 회사 내부의 작은 팀에서의 의사결정은, 그보다 큰 부서에서의 결정은, 더 나아가 회사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은 과연 구성원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일까?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책의 결정은 다수의 선택에 의한 것일까? 영향력 있는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선택으로 포장된 것은 아닐까?
혼자만의 생각인진 몰라도 우리 사회에서 좌우의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고,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하는 SNS 활동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중간 지대의 침묵하는 다수는 침묵함으로써 다수의 의견에 포함되어 버리고…
다수의 의견도 누군가 한 명에서 시작되고, 동조하는 사람이 생기고, 세력이 커지면서 다수의 의견이 될 것이다. 그 의견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테고, 그 과정에 수많은 방관자도 있고 목소리 높이는 반대자들도 있을 것이다.
다수의 선택이 정말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 선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향력 없다고 포기하고 불평만 일삼는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어야 할까? 작디작은 한 명의 구성원이지만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