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gO 레고 Jul 27. 2022

초코 에몽 & 또라이들

막상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으니 막막하다. 내가 다니던 대안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간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었던 초등학교 6학년의 내가 보인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무더운 여름날 남쪽 땅으로부터 날아왔던 습한 공기는 계절이 바뀌자 양쯔강으로 부터 날아온 가을의 맑고 선선한 공기로 바뀌었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맑은 공기를 쐬니 복잡했던 나의 감정들이 바람과 함께 실려나갔다. 나는 마치 이 공기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긍정적 감정은 머지않아 차멀미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다. 이놈의 멀미는 차를 탈 때마다 나를 괴롭힌다. 그저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버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대처다. 그저 참으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는 도착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을 때쯤, 차가 캠프 장소에 도착했다. 낡은 건물 입구에 친구 K가 날 반겼다. K는 내 오랜 친구이며 이곳에 같이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어색함이 들어 우리는 각자의 아빠 손을 꼭 잡고 서로 어색한 미소만 보냈다. 


“잘하고 와.” 


아빠는 떠났다. 덩그러니 나만 남기고, 그렇게 무심한 미소를 보이고.  음악실로 보였다. 선생님, 선배로 보이는 몇 명은 우리가 제출한 서류를 받고 정리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뻘쭘하게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한 선생님이 기타를 들고 오시더니 연주가 시작되었고, '시간을 뚫고'라는 찬양곡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캠프의 시작이었다. 몇 곡의 찬양이 끝난 뒤 선생님은 기타를 가지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이 무선 마이크를 들고 올라왔다. 교장선생님은 누가복음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 좋은 말씀을 워크북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버텨보니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교장선생님이 훈화 말씀까지 마치고 내려가자 다른 재밌는 선생님이 오셨다. 그 선생님은 선배님들을 각 학년 두레에 한 명씩 배치해주셨다. 


"레고야 안녕?"


선배가 나에게 인사했다. 언니의 친구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선배들은 모두 언니 친구였다.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선발 캠프에 선배들이 왜 있나 싶었지만 선배들은 우리를 평가하기 위해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게임을 진행하셨다. 탁구공을 튕겨 달걀 판에 넣는 게임을 했다. 생각처럼 잘 들어가진 않았지만 나는 우리 팀에서 에이스였다. 역시 머리가 좋으면 무슨 게임을 해도 된다라고 자화자찬하자마자 탁구공 게임이 끝났다. 다음 게임이 시작했다. 카드 뒤집어서 이야기 만드는 게임과 기억하는 게임을 했다. 나는 기억력 게임에는 젬병이었다. 탁구공 게임을 할 때 했던 생각이 바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역시 머리가 안되면 몸으로라도 때워야 하는구나라고. 


게임이 끝나고 앉아서 워크북을 작성했다.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배운 점과 느낀 점으로 워크북을 채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 활동에 대해 소감을 작성하라는 것이 워크북 작성의 이유였다. 나름 장문의 글로 워크북을 채운 뒤, 선생님들은 점토를 나눠주시면서 좋아하는 것이나 좋은 기억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예술 쪽은 자신 있어서 쓱쓱 만들었다. 뭘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엉망으로 만들어 바로 버렸다. 역시 예술도 머리가 좋아야 하나 보다. 이 캠프도 어쨌거나 면접에 들어가기 때문에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밝은 분위기였다. 


조금 힘들다 싶을 때 즈음 학교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에는 제육볶음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제육볶음을 좋아하지 않아 김치만 먹었다. 다행히도 김치가 너무 맛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먹다 보니 어느새 도시락은 비어있었다. 선생님들은 도시락을 치우며 잠시 쉬라고 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밖에 있는 정자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낡은 건물 밖에 있는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선생님들은 크롬만 되는 노트북을 나눠주며 설문조사를 하게 하였고 설문조사가 끝나고 나서야 우리는 집에 갈 수 있었다. 캠프가 끝나자마자 나는 워크북을 버렸다. 재미는 있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낯을 많이 가리는 나에게는 힘들게 다가와 그날의 힘든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캠프가 끝이 난 후 시간이 남아 나와 K는 주변에 있는 프리즘이라는 카페에 가서 해질 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K는 이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K의 아빠가 가라고 해서 지원한 것이라고, 그래서 떨어지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그때의 나는 K가 다른 애들의 기회를 뺏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같이 다니게 되면 내가 덜 외로울 거란 생각으로 K가 붙었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자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즈음 아빠에게 전화가 왔고 우리는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빠와 K의 아빠가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대화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피곤한 나머지 나는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며칠 후 면접날이 찾아왔다. 서류 읽으면서 순서를 기다리라는 말에 우리 가족은 통유리로 되어있는 교실에서 기다렸다. 엄마는 내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해주며 떨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크게 하라고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어느 여자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 면접실에 들어갔다. 그 교실에는 여자 선생님 한분과 남자 선생님 두 분이 앉아계셨다. 떨리지는 않았으나 할 말이 없어서 어려운 면접이었다. 내 대답은 거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와 같은 단답형이었지만 대안학교에 지원한 이유만큼은 진심을 다해 길게 대답했다. 


 면접이 끝난 뒤 며칠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아서,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는 연락에 떨어진 줄 알고 상심해 있던 어느 날, 아빠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언니 학교로 오라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차마 내가 붙었나, 떨어졌나 라는 질문도 꺼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바로 합격했다는 말을 하시지 않는 걸 보니 떨어진 게 분명했다. 떨어진 주제에 그곳을 다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울적했다. 버스를 타고 혼자 학교로 향했다. 


카론의 배에 탄 나 [출처] 내 아름다운 뇌


가고 싶지 않은 곳을 가는 여정은 지옥이다. 지원했지만 떨어진 학교에 다시 가야 하는 심정은 죽음으로 안내하는 카론의 배에서 느껴지는 그것이었다. 혼자 쓸쓸하게 탄 버스는 카론의 배라고, 내가 가는 길이 아케론 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 후 아빠는 별다른 말없이 초코 에몽을 사주셨다. 떨어진 것에 위로를 해 주시려고 사주시는 걸까? 초코 에몽은 진리다. 이런 상황에서도 달게 느껴져 살짝 위로가 되었다. 학교에 가보니 예비소집이었다. 나는 그제야 붙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나는 마음으로 K에게 전화를 했다. K도 붙었다고 했다.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았다. 초코 에몽을 하나 더 먹고 싶었다. 








겨울을 마무리 짓고 봄을 맞이하는 달인 2월에 학교는 체크 위크라는 프로그램을 굳이 새로 만들어 불러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쓸데없이 이런 걸로 부르나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닐 학교이니 기쁜 마음으로 임해야겠다 생각했다. 


“또라이들...” 


내가 말했다. 초면인 상대에게 말이다. 평범하게 알까기를 하는 중에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싶지만 그 상황을 보면 누구나 또라이라고 할 것이다. 배경은 이렇다. 우리는 그곳에서 보드게임도 하고 떡볶이도 만들어먹었다. 별거 없는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옆 테이블 애들이 알까기를 한 순간 깨져버렸다.



또라이 1 [출처] 내 아름다운 손


 “블레이드 버스트 더블 샷!” 


또라이 1이 말했다. 그러자 또라이 2가


 “크윽 이럴 수가 당했군... 하지만 나에겐 아직 5개의 알이 있지. 후후”


라며 받아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애가 

“ㅈ.. 저건..!! 살면서 본 적 없는 기술이야!! 이럴 수가!!”


라며 소란을 피웠다. 난 살면서 알까기 할 때 기술 이름을 말하는 애들과 그걸 보고 쿵작을 맞추는 애는 처음 봤다. 그날 후 반배정이 나오는 날 그 친구들 중 또라이 1과 주변에 있던 애가 같은 반이 되어 절망했다.








나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었던 삶이 상대에게도 똑같이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정말 그런지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그래? 나는 기억 안 나는데..” 


라며 그날의 뜨거운 추억을 기억하지 못한다.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날의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또라이 1, 그리고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은 내가 그려나갔던 대안학교라는 그림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이전 02화 이상하고 아름다운 인물사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