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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gO 레고 Jul 27. 2022

한 여름밤의 배움과섬김

친구들은 시험기간이 끝났음에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 유튜브를 켰다. 아이돌 영상과 각종 예능 영상들이 흩어져있다. 멍하니 화면만 보며 스크롤했다. 스윽 훑다가 볼만한 영상이 없어 유튜브 탭을 닫으려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때 한 영상이 눈에 띄었다. 2021년에 올라온 배움과 섬김 워십팀 영상이었다. 눈이 커졌고 반가웠다. 학교 유튜브를 구독하지 않았음에도 알고리즘에 떴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바로 영상을 틀었다. 기독교 학교라 노래도 '위대하신 주'라는 유명한 찬양이 흘러나왔다. 검정 화면에 시편 말씀이 뜨더니 곧이어 학생들이 보였다. 보다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친구들이었다. 친구가 내게 자신이 센터라며 질색팔색 하며 말했던 게 생각났다. 속 웃음을 지으며 다른 영상을 더 찾아보았다. 그러다 나는 독서클럽에 대한 영상을 발견했다. 내가 있는 영상은 아니었지만 보다 보니 내가 참여했던 독서클럽이 불현듯 생각났다. 








내가 독서클럽을 처음 접한 것은 8학년, 즉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배움과 섬김은 배운 것으로 섬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자기 계발 시간이다. 7개 정도의 과목이 있는데 학기마다 달라진다. 그 과목을 신청해서 뽑기로 뽑히면 들을 수 있는 형식이다. 화요일 오전 시간마다 중등 전교생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고 그 수업을 들을 때만큼은 학년을 섞어서 듣는다. 


처음에 신청 요령을 몰랐을 때는 인기가 많은 과목만 신청했었다. 그러다 뽑히지 않으면 그림책으로 마음 나누기 같은 잔잔하고 졸린 과목만 좀비 상태로 들어야 했다. 요령을 알게 된 것은 8학년 1학기 때였다. 하고 싶은 수업이 없었지만 그나마 듣고 싶었던 수업은 '독서클럽'이었다. 독서클럽은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고 책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 수 있는 수업이었다. 독서클럽은 인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선생님 때문이었다. 담당 선생님은 재밌기로 소문난 홍쌤이었다. 홍쌤은 내가 7학년 때 '세움'이라는 수업으로 처음 만났다. 홍쌤은 세움 수업에서는 공부 꿀팁을 가르쳤는데 노트 정리 방법이나 플래닝 수업을 주로 했다. 그때 다섯명의 선생님중 나의 담당 선생님이 홍쌤이었다. 홍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이 재밌다고 나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의 아끼는 제자가 되어있었다. 뽑기로 뽑긴 하지만 선생님의 재량으로 몇명을 꽂아넣을수 있다. 선생님이 나를 아끼긴 했지만 나를 꽂아넣을줄은 몰랐다. 워낙 인기가 많은 과목이라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알고보니 선생님이 나를 선택해 꽂아준거였다.


'아, 붙고 싶으면 선생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독서클럽은 8학년 4명, 9학년 4명으로 총 8명밖에 없었지만 청일점 둘로 인해 선배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남자가 차라리 선배였음 했지만 두 명은 아쉽게도 다 8학년이었다. 나름 인기가 있지만 까칠한 남자애(이하 까칠이)와 음침하지만 나름대로 인기 있는 남자(이하 음침이) 애였다. 선배들은 그 두 남자애를 보며 볼을 붉혔다. 어떤 선배는 한 번만 쳐다봐주면 안 되겠냐고 하며 소리까지 질렀다. 작고 아담하지만 박덕한(이하 박덕이) 친구와 나는 그 시간이 그저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는 선배들이 원숭이들을 구경하는 관광객처럼 보였다. 


[출처] 내 손가락


우리 독서클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독서클럽은 책을 읽고 느낀 점과 깨달은 점을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테스트도 있었다.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테스트를 볼 때에는 음침이와 까칠이가 매번 내것을 베껴 꿀을 빨았다. 한번은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쿠키를 굽는 시간이 있었다. 박덕이와 한 조가 되어 알뜰살뜰하게 만든다고 작은 틀로 많은 쿠키를 찍어내 마지막에는 둘이서 나눠가졌다. <메밀꽃 필 무렵>에 보름달이 나온다며 보름달빵을 나눠주었다. 코로나때문에 먹지말라는걸 몰래 먹고 맛있어하기도 했고, <내 마음의 과일나무>를 읽고 매점 테라스에서 키우는 토마토에게 토마(캐릭터 캐릭터 체인지에 나오는 토마를 보고 영감을 얻은 이름이다.)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수업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모르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왔다. 그날은 선생님이 독서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독서모임은 부모님을 초청해 우리가 수업할 때 읽었던 책들을 한 명씩 맡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불평을 늘여 놓았지만 선생님의 입에서 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우리는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각자가 담당해야 할 책을 고르기 위해 뽑기를 했다. 선생님이 종이를 만들어 아무거나 뽑으라고 펼쳐놓으셨다. 나는 엘리사 모건이 쓴 <내 마음의 과일나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내용이 짧고 간단했기 때문이었다. 멀리 있는 종이를 쳐다보았다. 왜인지 저 종이가 <내 마음의 과일나무> 같았다. 하지만 나는 멀리 가기 귀찮아 제일 가까운 종이를 골랐다. <방관자>라는 책이 뽑혔다. <방관자>는 학교폭력에 관한 내용의 책이다. 다른 책에 비해 주제가 무거운 만큼 인기도 없고 설명하기도 어려운 책이었다. 당연히 인기도 없었다. 그런 책을 내가 뽑았다. 내 손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고 나는 절망했다. 다음으로는 준비 담당을 정했다. 머핀 담당은 나와 박덕이, 샐러드 담당은 남자애 둘, 의자 정리와 안내 역할은 선배들이 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독서모임 날이 왔다. 나와 박덕이는 제빵사 뺨치게 예쁜 머핀을 굽고, 선배들은 앉아서 노닥거렸다. 남자애들 둘은 샐러드를 만들다 우리에게 와서 초콜릿이나 마쉬멜로우를 집어먹었다. 그러다 머핀이 다 만들어질 때 즈음 독서모임은 시작되었다. 자리가 하나둘씩 찼다. 우리의 긴장감은 고조됐다.  우리들은 하나둘씩 각자 발표할 대본을 외웠다. 그 모습을 보고 더 긴장했다. 나는 그제서야 대본을 가져오지 않았다는걸 알아차렸다. 나는 더 긴장했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기억나는 것 만이라도 완벽하게 발표하기 위해 급한 대로 머릿속에 대본을 쓰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피피티에 쓴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예민한데 뒤에서 속닥속닥 소리가 아주 거슬렸다. 음침이와 까칠이가 수다를 떠는소리였다.


"음침아 입 다물어"

"응... 미안..."


음침이는 소심하게 답했다. 하지만 또 소곤소곤 소리가 들렸다.


"음침아 말하는 건 좋은데 안 들리게 좀 해"

"아니~ 나만 떠든 것도 아니고.."


음침이가 억울해하자 옆에 있던 까칠이도 음침이에게 입 좀 닫으라고 장난 스래 말했다. 그제야 음침이는 조용히 떠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다행히도 티비가 안 틀어져 틈이 생겼다. 그 틈을 이용해 피피티를 확인하는 척하며 간신히 내용을 외워 발표를 했다. 


"<방관자>는 2009년에 제임스 프렐러에 의해 쓴 책입니다. 제임스 프렐러는 <해리포터>로 유명한 출판사 '스콜라스틱'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만난 작가들과 어울리며 거기에서 자극을 받아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제임스 프렐러는 <직소 존스 미스터리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책은 방관자가 곧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고 그동안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모른 체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했습니다.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출처] 내 사진첩


선생님은 소심했던 내게서 새로운 모습을 봤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뽕이 차올랐다. 광대뼈가 올라가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발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왔다. 식사는 우리가 만든 머핀과 샐러드 그리고 홍쌤이 만드신 딸기라떼와 유자차였다. 몸 쓰는 것은 막내들이 하라는 듯 8학년이 음식 서빙을 했고 선배들이 주문을 받았다. 나와 박덕이가 머핀을, 음침이와 까칠이가 샐러드를 옮겼다.


"음침아 이건 너꺼"


음침이에게 내가 만든 머핀을 주었다. 내가 만들때 색다르게 마시멜로우를 넣어보았다. 음침이는 별생각 없다는 듯 머핀을 가져갔다. 그 머핀은 나와 박덕이가 만들다 망한 머핀이었다. 나는 음침이가 그 머핀을 먹을 거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나는 딸기 라떼를 마셨다. 홍쌤이 만든 딸기 라떼는 내가 먹어본 딸기 라떼 중 네 번째로 맛있다. 첫번째는 집 근처에 있는 인스타감성 카페, 두번째는 평택 소사벌에 있는 이름모를 카페, 세번째가 엄마가 만든 딸기라떼였다. 나는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딸기 라떼를 흡입했다. 딸기 라떼는 딸기의 상큼함이 살아있으면서도 달달했다. 딸기 라떼를 음미한 후 머핀을 먹었다, 가 바로 뱉었다. 머핀이 너무 맛없었다.안 익은 밀가루 반죽맛이었다. 어쩜 이런 맛이 나지 싶었다. 혹시 내가 맛을 잘못 느낀 것인가 싶어 한입을 더 먹어보았다. 괜한짓이었다. 먹기 싫어서 나는 먹던 머핀을 내려놓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박덕이도 맛이 없었는지 머핀에 올려놓았던 마쉬멜로우만 파먹고 있었다. 



[출처] 머리


나는 고개를 저으며 포크로 샐러드를 찍었다. 샐러드는 머핀과 달리 맛있었다. 우리가 키운 토마토와 발사믹 소스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었다. 입안에 상큼함이 감돌다 깔끔하게 사라졌다. 샐러드를 잘 만들었다 생각하며 음미하다 보니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었다. 나는 언니에게 줄 맛없는 머핀을 하나 싸고 나서 밖에 나왔다. 나는 친구에게 인사를 한 후 차에 탔다. 6월 밤의 선선한 공기는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내가 만든 머핀을 먹고 언니가 지을 표정을 생각하니 염소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나는  머핀을 꼭 껴안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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